우리나라 검시제도에 대한 법적 검토
(검시제도에 대한 세미나에서 법률가의 견해, 1996)




1. 문제점들의 근본원인은 제도에 있다. 법의학이 독자적 입장에서 독립적으로 형사소송절차의 전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중 일부인 수사과정에서 검찰이나 경찰에 종속됨으로 인해 실체적진실의 발견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인권보장이라는 두가지 목표를 모두 놓치고 있다.

2. 검시(檢屍)라 함은 검시(檢視)와 검안(檢案) 그리고 부검(剖檢) 모두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보다 넓게는 검시를 토대로 한 감정의견도 같은 개념 속에 포괄 될 수 있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관련규정으로 단 한 개문 만을 두고 있다. 동법 제222조에서 변사자 또는 변사의 의심이 있는 사체가 있는 때에는 그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방검찰청 검사가 검시하여야 하며 검시결과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인정되고 긴급을 요할 때에는 영장없이 검증할 수 있으며, 검사는 사법경찰에게 위 처분을 명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대륙법계국가들은 검시제도의 책임과 권한을 소추기관인 검찰에 두고 있다. 한편 영미법계 국가들은 검시관(Coroner)이라 불리는 검찰과는 별도의 법률가를 임명 또는 선출하여 오다가 최근에는 법의관(Medical Examiner)이라 불리는 의사들에게 그 권한을 부여하는 추세로 가고 있다.
국가 소추권을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기소독점주의의 대륙법계인 우리나라에서 별도의 검시관이나 법의관을 두는 것은 전체 사법구조상 허용되기 어렵다. 그러나 의학 비전문가인 검사가 검시제도를 주관함으로써 실체적 진실 발견에 있어서 비효율적이고 당사자 대등주의의 일당사자인 검사에 의해 검시제도가 운영됨으로써 인권보호의 측면에서 커다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이 두 측면에서의 보완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3. 검시주체의 문제

1) 검시의 주체인 검사는 법의학 비전문가이다.
소극적인 측면에서는 발생 범죄를 놓치는 일이 벌어진다. 검시의 주체인 검사는 법의학의 비전문가이다. 1년에 만여건 이상이 발생하는 변사사건에서 어느 것이 어떤 점에서 자연사가 아니고 범죄와 관련되어 있는지를 판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변사체 발생보고가 있으면 막연히 '사체를 검시하여 타살혐의가 없으면 사체를 유족에게 인도할 것'이라는 수사지휘를 내리는 것이 검시 행위의 전부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여기서 타살혐의의 판단은 검안의, 경찰, 119구조대에게 맡겨지게 되고 이에 따라 위장된 범죄의 경우 수사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자연사 처리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검시제도를 담보하는 검사는 실제로 검시 및 판단 행위에서 벗어나 있고 실제행위를 하는 검안의, 경찰, 119구급대는 판단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2) 적극적인 측면에서 범죄행위의 판단을 내림에 있어 비전문가인 검사가 전문적 지식의 부족으로 잘못된 결정을 내렸을 경우 사건은 처음부터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인 법의학자가 처음부터 간여하였더라면 마약에 의한 중독사로 판단하고 이러한 방향에서 세밀한 조사를 하였을 사건이 비전문가인 검사에 의해 살인사건으로 판단되고 특정인이 범인일 가능성을 전제로 법의학자에게 의견을 물어 올 때 법의학자는 수사기관이 준 정보만을 토대로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법의학을 이해 못하는 법원이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 가지고 유죄를 선고하는 일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법의학 전문가가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간여 하였더라면 제대로 방향을 잡을 수도 있는 사건들에서 비전문가인 수사관들 만이 간여하여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수사가 전개되고 그 수사를 합리화시키는 선에서 법의학적 지식을 동원함으로 인해 재판과정에서 수사기관이 준 정보를 토대로 조언을 한 법의학 전문가들이 여지없이 논박되고 배척되며, 그 과정에서 진범을 잡을 수 있는 증거들이 모두 소실될 수도 있는 것이다.

4. 검시 또는 법의학자 활용 방법의 문제

앞에서 이미 논해진 바와 같이 비전문가인 검사나 경찰수사관에 의해 사건 방향이 정해지고 법의학적 전문지식은 이를 합리화 할 수 있는지 만을 활용됨으로 인해 실체적 진실발견도 어려워지고 억울한 인권침해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은 현재 제도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이다.
아울러 당사자 대등구조의 일방당사자인 검찰 등 수사기관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등 국가기관 이외에 대학 부설법의학교실에까지 검시 또는 감정의견을 의뢰함으로 인해 타방 당사자인 피고인, 그리고 법적 판단의 최종 주체인 법원의 감정 기회를 박탈하는 현 관행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논리 필연적 물리.화학이 아니고 이들이 종합된 경험과학인 법의학에 있어 대개의 경우 그 감정결과는 범죄의 증거가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는데 수사기관이 선점함으로 인해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점만을 강조하고 이에서 더 나아가 확실한 증거다라고 단정하는 오류를 만들어 내는 제도적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

5. 검시대상의 문제

현행 검시제도하에서는 주관자인 검사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그 사체가 범죄에 기인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범죄와 관련없는 직업병.산재로 인한 사망사고의 경우 그 보상이나 배상을 둘러싸고 사인규명의 필요성은 점점 높아져가고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직업병.산재관련 사망의 경우 단순한 병사 또는 사고사로 사망진단서가 발행되어 종결이 되기 때문에 민사재판에서 그 원인 규명이 어렵고 이는 결국 피해당사자의 불이익으로 돌아가고 마는 경우가 많다. 영미법계 국가의 경우 예를 들어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에서는 직업병이나 산재의 경우에도 법의관이 적극적으로 간여하여 구체적 사인 규명을 하고 있다.

6. 정치적 사건의 경우

우리사회는 아직도 의문사라고 주장되는 사건들이 매년 수건정도 발생하고 있다. 군복무나 교도소 복역중 혹은 노동쟁의나 빈민, 학생운동과 관련하여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고 주장되는 사건에서는 거의 어김없이 부검을 둘러싸고 커다란 문제가 발생한다. 이 경우 검사를 주체로 하는 현행 검시제도보다 객관성이 담보되는 한시적 합의제 기구를 구성하는 방법도 검토해 볼 만하다.


7. 의학 비전문가인 법률가의 입장에서 구체적 대안을 내는 것은 역부족이고, 다만 이런 논의를 토대로 좀더 본격적인 대안 검토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문제제기를 하는 것에 만족하고자 한다. 대략의 방향을 몇 가지 제시해 본다.

첫째로 현재 우리사회가 처해있는 상황에 비추어 법의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대폭 늘어나고 그들의 지식과 이론이 상호 비판 검증되어야 한다.

둘째로 법의학자들이 보다 독립된 위치에서 적극적으로 형사소송절차에 간여하여 검찰의 검시 책임을 실질적, 전문적으로 보완해 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로 수사과정에 참여하는 법의학자들 이외에도 피고인, 그리고 법원의 판단을 도울 수 있는 수사기관으로부터 독립된 법의학 기관들이 존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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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성이 보장되는 검시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