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당원의 판단

(1) 이 사건의 쟁점

피고인은 1995. 6. 12. 06:00경 깨어나 식사준비를 하는데 아내가 깨어나 밥을 차려 주었으며, 07:00경 출근할 때에 딸을 안고 문앞에 서 배웅하면서 뽀뽀까지하여 주었다고 변소하고, 피해자 최수희가 6. 11. 22:30경 언니인 최xx와 전화통화를 한 사실 및 피고인이 사건 아파트 1층 경비실앞을 06:55-07:00경 통과하여 밖으로 나간 사실은 최xx와 경비원인 김xx의 진술에 의하여 명백히 인정되므로, 결국 이 사건의 쟁점은 피해자들이 피고인이 집에 머물고 있던 6. 11. 22:30경부터 6.12. 07:00경 사이에 살해된 것인지(이 경우라면 피고인에 의한 범행으로 보 아야 할 것이다.) 여부에 달려 있다 할 것인바, 원심은 주로 위 사망시각 감정결과와 우유병, 식기세척기등

현장상황 등을 종합하여 피해자들이 6.11.23:30경부터 6.12.06:30경 사이에 살해된 것으로 보면서 그외 피고인 의 변소를 의심하게 하는 여러 정황증거, 동기를 추측할만한 사정들, 제 3자의 범행가능성을 상상키 어려운 점 등을 더하여 피고인을 유죄로 단정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에는 그대로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므로 아래에서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2) 원심이 채택한 증거들에 대한 검토

(가) 사망시각추정과 관련된 사체감정결과에 대하여

시반에 의한 추정 : 시반이란 적혈구가 융해되면서 혈관벽이 혈색소에 의하여 염색되어 외관상 피부에 암적갈색 반상의 형태가 나타나는 현상으로, 시반이 발생하는 부위는 중력에 의하여 피가 모이는 아랫부분이고 다만 지면 등에 직접 닿은 부위에는 압력에 의하여 시반이 발생하지 아니한다.

시반은 일반적으로 사후 30분부터 3시간 사이 자적색의 점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여 4-5시간 지나면 암적색의 반상으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사후 4-5시간 까지에는 혈색소가 주위조직에까지 는 침투하지 아니하고 혈액도 유동혈이 대부분이므로 체위변경시 종래의 시반은 사라지고, 변경된 아랫부분에 새로운 시반이 나타난다.(이것을 이동성시반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좀더 경과한 후 체위를 변경하면 시체내에 자가융해가 이미 시작되면서 적혈구에도 용혈이 오게되고 용혈된 혈색소는 혈관벽 을 통과하여 주위조직으로 침입하게 되는데 이렇게 형성된 시반은 체위의 변경에 의하여도 없어지지 아니한다.

이를 시반의 고착 또는 침윤성시반이라고 부르고 일반적으로 사후 4,5 시간부터 10시간 정도 경과시 까지 발생한다. 침윤성시반의 발생초기에는 아직 유동혈이 남아 있기 때 문에 체위변경시 종래 발생한 시반이 사라지지 아니하는 외에도 다시 변경된 체위의 하방부위에 약하나마 새로운 시반이 발생하는 데 이와 같이 체위 양쪽편에 시반이 공존하는 것을 양측성시반이라고 한다.

이 사건에 있어서 원심이 거시한 사법경찰관 김xx 작성의 실황조사 서의 기재, 증인 김xx, 권xx의 당심에서의 진술, 위 실황조사서시 찍은 사진(수사기록 7권 123쪽), 부검시 찍은 사진(수사기록 9권 44쪽)의 영상 및 당원의 현장검식 비디오테이프에 대한 검증결과 등을 종합하면, 이 사건 피해자인 최수희는 발견 당시 욕실의 욕조 물속에 얼굴을 밑으로 향한 자세로 얼굴은 물에 잠기고 좌측 어깨와 등 일부가 물밖에 나 와 있으며 상체는 물에 뜨고 허리부분부터 물에 잠겨 무릎부근은 거의 욕조 바닥에 닿을 정도로 잠겨 있었으며 양다리는 무릎에서 구부려져 발바닥이 물밖에 나와 있었고 몸이 우측으로 약간 기운 상태였다. 위 사 체의 상반은 옷을 걸치지 아니한 채 발가벗겨 있었고, 하체에는 팬티가 우측 대퇴부에서 좌측 무릎 부근으로 비스듬하게 허벅다리 부위에 걸쳐 있었다. 6. 12. 11:30경 사체를 물에서 건져 내어 검안하였을 때 시반은 주로 경부, 우측어깨 및 가슴부위, 복부 및 대퇴부에 나타나 있었다. 검안 시 사체의 체위를 변경하여 얼굴을 위로 한 상태로 다음 날인 13. 10:30 경 부검시까지 보관하는 바람에 시반이 등부위에 새로 생겼는데 새로 생긴 부위 외에 감식시 있던 우측대퇴부위에도 시반이 잔존함이 관찰되었다.

위 시체소견을 중심으로 사망시간을 추정한 의사 권xx, 황xx, 이xx은 부검시 위 대퇴부에 잔존하는 시반이 있음을 근거로 이는 양측성 시반이고, 따라서 위 검안시부터 일반적으로는 5시간 내지 10시간 전, 예외적으로는 4시간 내지 12시간 전에 사망하였음이 추정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위 권xx의 진술 및 사진의 영상 등에 의하면, 6.12.11:30경 행한 사체검안시에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목, 가슴, 배 등의 부위에 외 관상 뚜렷한 시반이 관찰되었는 데, 반면 6.13.10:30경 행한 부검시에는 사체의 등부위에는 짙은 적색의 시반이 완전히 형성되어 있으나 검안시 존재하였던 시반은 대퇴부 이외의 다른 부위에는 소실되어 있었던 사실 이 인정되는 바, 양측성시반의 생성원리가 위에서 본바와 같이 적혈구가 용해되면서 혈색소가 주위조직으로 침투하여 시반을 고정시키고 남은 유동혈이 체위변경에 따라 새로운 시반을 형성하는 것이라면, 왜 다른 부위에 형성된 시반은 적혈구의 용혈현상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소실하 였는지(증인 황xx은 시반의 생성원리상 그와 같은 일이 있을 수 없다 고까지 하고 있다.), 팬티고무줄 자국 주위에 형성된 대퇴부 시반은 고무 줄의 압박에 의하여 옆부분에 피가 몰림으로써 다른 부위보다 일찍 형성된 것일 가능성은 없는 지, 위와 같이 대부분의 부위에 형성된 시반은 소실하고 한 부분의 시반만 남아 있는 경우에도 양측성시반이 발생한 사후시간을 연구보고한 법의학서에서 언급된 양측성시반이라고 할 수 있는 지 하는 의심이 남는다.(재판부가 당심에서 감정증인들에게 이러한 의문점에 대한 설명을 구하였으나 위 증인들도 이에 대하여 납득할 만 한 설명을 하지 못하였다.)

또한 위 시반이 양측성시반이라 하더라도 대퇴부 이외의 다른 부위에 발생한 시반이 소실된 이유를 위 사체가 우측으로 기운 상태에서 무릎 이 상체부위보다 낮은 위치에 있어 다른 부위보다 먼저 우측대퇴부에 시반이 형성되고 이에 따라 다른 부위의 시반보다 먼저 고착되었으나 다른 부위의 시반은 고착될만한 시간이 아직 경과하지 아니하여 소실한 것이라고 가정하면, 이는 위 검안시가 사망후 사체의 융해현상이 시작되 어 적혈구가 용혈되기 시작하는 무렵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 바,(증인 권 일훈은 위와 같은 가능성이 있다고 진술한다.) 이를 구체적 시간대로 표 시하면 시반이 고정되는 시간대를 사후 4시간부터 12시간이라고 하면 4 시간, 5시간부터 10시간이라고 하면 5시간에 가까운 시간이 경과한 것이 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양측성시반의 경우 사체 양면에 나타나는 시반의 색과 범위는 용해된 적혈구의 양과 이동된 적혈구의 양에 의하 여 결정되므로 시간이 경과되어 용해된 적혈구의 양이 많으면 새로 형성되는 시반은 종래의 시반에 비해 희미하고, 반대로 시간이 얼마 지나 지 않았을 때에는 유동혈의 양이 많아 새롭게 형성된 시반이 훨씬 선명 한 것인데, 위 부검시 사진을 보면, 최수희의 사체시반은 새롭게 형성된 등부위의 시반이 기존의 대퇴부시반보다 훨씬 선명하고 범위도 넓은 점에 비추어, 사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따라서 이를 검안시각인 11:30부터 역산하면 당일 7:30경에 사망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증인 이xx은 위 사체가 물에 떠 있었으므로 부력의 영향으로 인하여 시반이 늦게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따라서 이 사건의 경우 사망 시부터 검안시까지 일반적인 양측성시반 관찰시간보다 많은 시간이 경 과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07:00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봄이 옳다 고 진술하고 있으나, 다른 2명의 감정인들이 위 견해에 동의하지 아니하고 있고, 법의학서나 연구논문등에도 위와 같은 실제사례가 보고된 일이 없으며, 시반의 형성원리에 비추어 보아도 시반의 형성은 중력에 의하여 되는 것이므로 부력이 시반의 형성을 늦출 수도 있을 것이나, 시반의 고착은 적혈구의 용해가 원인이고 용해는 부패로 가는 한 과정으로 부력 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고 판단되므로 이xx의 견해는 선뜻 믿기 어렵다.

나아가 그 시각추정의 정확성에 대하여 살피건대, 시반소견을 토대로 사망시각을 추정하는 법의학자들의 감정의견은 수학적인 공식에 의하여 계산된 것이 아니고 종래 사망후의 시반현상을 관찰하여 보고한 논문들 을 기초로 한 것인데, 그 논문들을 보면 "양측성시반이 형성되는 시각은 사후 7-8시간", 또는 "시반은 사후 4-12시간 사이에 고착 또는 부분고착 된다."는 식으로 개괄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그와 같이 시간으로 구분하 여 표현한 이유는 사후 위 시간이 정확히 경과하였을 때 시반이 고착됨 이 관찰되어 그대로 기재한 것이라기 보다는 대략의 관찰시각을 시간별로 나누어 기재(예를 들어 3시간 50분이 경과할 때 시반의 고정이 관찰 되었다면 4시간으로 구별하는 식으로)한 것으로 봄이 합리적이라 할 것 이다. 또한 시반이 고정되는 시간이 수학적인 공식으로 정확히 계산 가 능한 것이 아니라 사체가 사후 얼마나 지나 융해되느냐 함에 따른 것이고, 사체의 융해는 사체가 놓여진 환경, 사체의 신체적특질 등에 의하여 제각기 결정되는 것이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위 사망시각의 추정은 대략의 범위를 일응 정한 정도의 것으로 해석하여, 유죄판단의 자료로 사 용함에 있어서는 다른 증거들과 종합하여 그 증거가치를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문언 그대로 해석하여 위 추정사망시각 이후(예를 들어 이 건에 있어서 07:40이나 07:50경)의 사망가능성을 완전히 부인 하는 자료로는 쓸 수 없다고 봄이 유죄의 인정은 엄격한 증명에 의하여 야 한다는 형사소송법상의 원칙에도 부합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위와 같은 의심점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이 사건 최수희의 시반만을 기준으로 최수희가 피고인이 집에서 나간 07:00 이전 에 사망하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시강에 의한 추정 : 최수희의 사체를 직접 부검하여 감정한 권xx은 위 사체의 시강이 지관절에까지 나타난 전신시강이고, 검안시 강직을 인위적으로 해소시킨 뒤 부검시까지 23시간 동안 냉동상태로 보 존하였는데도 부검시 강직현상이 나타나지 아니한 점에 비추어 재강직은 일어 나지 아니한 것으로 추정되는 바, 온화한 기후의 평균적인 조건 하에서 시강이 전신에 출현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다수문헌에 의하면 6 내지 12시간, 소수문헌에 의하면 2 내지 13시간이 걸린다고 하므로 강직 만을 기준으로 할 때는 사망시각이 6.11.22:30-6.12.09:30 사이로 추정되고, 재강직이 발생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은 강직을 해소시킨 시점이 사후 7-8시간 이상 경과한 때라는 의미이므로, 이 점까지 감안하여 사망시각 을 추정하면 6.12.03:30-04:30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다 음 황xx은 이 사건의 경우 최수희의 사체가 더운 물에 담겨져 있어 사체강직이 조기에 출현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사체강직 상태만으로는 사망시간을 추정하는 데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성인의 경우 사후 6시간 내에는 사체강직의 발현에 온도의 영향이 별로 없다는 주장도 있으므로, 권xx의 의견에 타당성이 있다고 한다.

끝으로 이xx은 최수희의 사체 표피가 벗겨지거나 하지 아니한 점에 비추어 위 욕조의 물이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거운 것은 아니었다고 판단되고 이를 감안하여 경험적으로 사망시각을 추정하면 위 검안시인 11:30부터 최소한 7-8시간 이전이라고 주장한다.위 실황조사서, 원심이 거시한 사법경찰관 박xx 작성의 수사보고의 기재와 위 감정인들의 당심에서의 진술에 의하면, 사체강직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인자는 온도로서 일반적으로 여름에는 겨울보다 강직이 빨리 오는 사실, 최수희의 사체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욕조내 물에 잠겨 있었는데, 위 검안시 욕조물의 온도는 미지근하였으며, 그 후 당시 느낀 온도를 측정하여 본 결과 32도 정도로 추정된 사실, 경찰관 김삼오 등이 한 욕조물 측정실험에 의하면 38도의 물이 32도가 되는 데 3시간 20분 정도가 소요되었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바, 위 감정인들은 구체 적으로 온도가 사체강직을 얼마나 빠르게 하는 지에 대한 자료가 없고, 피부가 벗겨질 정도의 뜨거운 온도가 아니면 강직에 큰 영향은 미치지 아니하였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온화한 기온의 강직상태 관찰례를 기준으로하여 이 사건 강직상태에 의한 사망시각 추정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변호인들이 당심에서 제출한 증제6호증의2(일본 실용법의학서)의 기재에 의하면, 사체는 20도의 온도에서는 사후 1시간에 강직이 시작 되어 6시간 15분만에 강직이 완성되나, 29도의 온도에서는 사후 50분에 강직이 시작되어 4시간 10분에 강직이 완성되며, 37.5도의 온도에서는 35분에 강직이 시작되어 2시간 35분만에 강직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위 법의학서의 기재가 부정확한 것이라고 볼 다른 자료가 없고, 또 평상온 도인 20도에서의 강직시간 보고는 다른 법의학서의 설명과도 큰 편차가 없으므로, 위 법의학서의 내용은 신뢰할만하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이를 이 사건에 적용하여 보면, 최수희의 사체가 검안시인 11:30부터 약 3시 간 이전에 38도의 물에 잠기면 위 검안시 관찰된 정도의 전신강직 상태 를 보일 수 있다는 결론이 된다.

다음 재강직이 일어 나지 아니하였으므로 사후 7-8 시간 정도 경과하였을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에 대하여 보건대, 증인 권xx의 증언에 의하여도 이를 단정할 만한 객관적인 근거는 없고 검안후 재강직이 발생하였다가 부검시까지 자연소실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므로 최수희의 사체가 재강직을 일으키지 아니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려울 뿐 아니 라, 또한 재강직이 일어 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온도의 영향으로 강직이 빨리 완성된 경우에는 사후 7-8 시간 경과 전에 강직을 인위적으로 해소 하더라도 재강직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고, 이 사건의 경우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높은 온도에 의하여 강직이 조기에 발현하였을 가능 성이 충분하므로, 재강직이 일어나지 않았다하여 사후 7-8시간 이상 경 과한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온도를 감안하지 아니한 위 감정인들의 시강에 의한 사망시간 추정으로 최수희의 사망시간이 07:00전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③ 위 내용물에 의한 추정 : 원심이 든 권xx 작성의 사망시간 추정의 기재, 권xx의 당심에서의 증언 등에 의하면, 부검결과 최수희 의 위에서는 비교적 소화되지 아니한 죽상(semisolid)의 취식물이 350 g 정도 들어 있었는 바, 그 내용은 쌀밥알, 미역, 생선육편, 무, 배추, 양파, 파, 고춧가루로 판단되며, 일반적으로 위 및 십이지장내에 식물이 남아 있고, 소화가 어느정도 진행된 상태라면 식후 2-3 시간으로 추정되고, 식사양에 따라 가벼운 식사는 식후 1.5시간 내지 2시간 정도, 보통의 식 사는 3-4시간, 많은 양의 식사의 경우에는 4-6시간이상까지 위내에 음식물 이 잔존하는데, 수사자료에 의하면 위 최수희는 저녁식사를 하였을 뿐 아침식사를 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므로, 위내용물로 본 사망시간은 11. 23:30경부터 12. 04:00 사이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먼저 최수희의 위내용물이 저녁식사인지 아침식사인지 보건대, 최수희 가 저녁식사를 하였을 뿐 아침식사를 하지 아니하였다고 직접 인정할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피고인은 오히려 자신이 먹은 아침식사 반찬을 치우려고 하자 최수희가 자기도 아침을 먹을 것이니 그대로 두라고 하여 반찬은 그대로 두고 밥그릇들만 치웠다고 주장한다.) 다만, 피고인이 전날 저녁에 먹었다는 미역국 성분은 위 부검시 확인된 반면 아침에 먹 었다는 콩나물국의 성분은 발견되지 아니한 점, 최수희가 사용하는 식기 세척기내에는 전날 사용한 그릇들만이 들어 있을 뿐 아침식사에 사용한 그릇들은 위 세척기 내에나 씽크대 안에서 발견되지 아니한 점 등의 간 접증거들만이 위장내용물이 저녁식사시의 음식물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될 뿐이다.

그러나 먼저 피고인이 6.11. 저녁에만 미역국을 먹었을 뿐 6.12. 아침에는 미역국을 먹지 아니하였는 지를 살펴보면, 이에 부합하는 증거로는 피고인의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서, 진술조서, 피의자신문조서의 기재 등이 있으나, 피고인의 진술내용은 6.12. 아침식사에 대하여 피고인 이 먹은 식사내용을 말한 것일 뿐 최수희도 같은 국을 먹었다고 한 것 이 아닐 뿐 아니라(피고인에게는 냉장고의 콩나물국을 데워 주고 최수희 는 전날 저녁 먹다 남은 미역국을 피고인 출근 후 혼자서 먹었을 가능 성도 있다.), 자신이 아침식사시 콩나물국을 먹었다고 진술한 내용도 그 정확한 내용은 "국은 콩나물국이었던 것 같고"(6.12. 작성한 자술서), " 콩나물국으로 생각이 듭니다."(6.13. 작성한 자술서), "아침에 먹은 국은 콩나물국 같은 데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6.17. 작성된 2차 진술 조서)등으로 콩나물국이라고 단정적인 진술을 한 것이 아니고, 그 후 3 차, 4차,5차 진술조서에는 아침에 콩나물국을 먹었다고 단정적인 진술을 하였으나 6차 진술조서에서 3 내지 5차 진술조서에서 그와 같이 진술한 것은 전에 콩나물국을 먹었다고 하였기 때문에 확신을 못하면서도 그렇게 말을 한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바, 사람의 기억은 아침식사 내용 등의 일상적인 것에 관하여는 그다지 오래 지속 되지 아니한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상 타당할 뿐 아니라 피고인 및 이용 희의 진술에 의하면 피고인은 6.11. 아침식사시 콩나물국을 먹었다는 것 이므로 아내와 딸을 잃은 입장에서 극히 혼란된 심리상태에서 경찰조사 를 받는 피고인으로서는 국의 내용을 혼동하여 진술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인다. 또한 만일 피고인이 범인이라면 의사로서 사체의 부검에 의하여 살해전 최수희가 먹은 식사내용물이 검출된다는 지식을 갖고 있을 피고인이 최수희가 먹지도 않은 국을 먹었다고 진술하여 의심을 살리도 없을 것이라고 판단되므로, 최수희의 위에서 미역이 검출되었다는 이유 만으로 위 내용물이 저녁식사시 먹은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음, 식기세척기내에 전날 사용한 그릇들만이 들어 있을 뿐 아침식사에 사용한 그릇들은 위 세척기 내에나 씽크대 안에서 발견되지 아니한 점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아침에 먹은 국그릇과 밥그릇을 손으로 씻어 찬장에 넣고 아직 식기세척기의 식기들을 옮겨 놓기 전에 살해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이 사실만으로 저녁식사시 먹은 음 식이 위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위 감정인 권xx, 황xx의 당심증언에 의하면, 위 사망시각추정은 최 수희가 저녁식사를 한 것이 위내에 남아 있다는 전제하에 한 것으로서 위 내용물이 아침식사시 먹은 것이라면 위 사망시각추정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감정인들이 위와 같이 전제한 것은 경찰이 제공한 수사 자료에 근거한 것이라는 것인 바, 범인이 누구인지를 가려내기 위한 수 사단계에서의 경찰은 마땅히 아침식사를 하였다는 피고인의 주장도 아울러 제공하여 모든 경우의 감정을 의뢰하여야 했을 것이다.)

오히려 당심증인 이xx의 진술에 의하면, 최수희가 6.11. 친정에 놀러 왔다가 집으로 돌아 갈 때 당근과 시금치를 넣어 만든 쌀죽을 바이오 그릇에 한 그릇 싸주었는 데 그 날 저녁 21:00경 최수희와 전화통화시 최수희에게 죽을 먹었느냐고 물어보자 지금 먹었다고 대답하였다는 것 이므로, 최수희의 위내용물이 저녁식사시 먹은 것이라면, 위 죽의 성분 중 비교적 단단한 성질의 당근 역시 발견되어야 할 것인데 위 부검시 당근의 흔적이 발견된 바 없다.(이xx는 죽을 푹 끓이어 쌀은 형체가 있으나 시금치와 당근은 모두 녹아 형체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진술하나, 당근은 쌀보다 단단한 성질의 것이므로 쌀이 형태가 온전할 정 도로 끓인 죽에서는 당근 역시 형태가 그대로 있을 것으로 판단되므로 위 진술은 믿을 수 없다. 또한 위 죽이 모두 소화되어 위에 남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으나, 죽을 먹은 것은 21:00 약간 못미치는 시간이고, 저녁식 사는 21:30 무렵에 하였으므로 죽을 먹은 지 30-40분 정도 후에 저녁식 사를 하였다는 것인 데 그렇다면 밥이 상당부분 위에 남아 있는 경우 죽도 일부분은 발견되어야 정상이라고 할 것이다.)

또한 변호인이 당심에서 제출한 증제6호증의3, 같은호증의9,11의 기재 에 의하면, 위장관에서 음식물이 배출되는 시간을 측정하는 실험을 방사 성동위원소를 음식물에 넣고 시간별로 위에 남아 있는 양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한 결과 복음밥 235g, 계란탕 33g, 닭간 40g을 섭취시킨후 그 반이 위에서 배출되는 시간은 58분-1시간40분 정도가 소요된다는 것이 고 김치 약간에 밥, 미역국 각 반그릇의 무게는 384g, 2/3 그릇의 무게 는 약 452 g, 각 1그릇의 무게는 약 662g이라는 것인 바, 위 사실에 최 수희의 식사량이 적었다는 이xx의 진술, 부검시 최수희의 위내에 남아 있던 잔존식물의 양, 잘 때는 빼는 콘택트렌즈가 최수희의 사체에 착용 된 채 있던 사실등을 더하여 보면, 최수희는 식사후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 구체적으로는 2시간 내지 2시간 30분 이내에 사망한 것으로 봄이 합리적이라고 할 것인 바, 만일 최수희가 21:30경 저녁식사를 하고 그로 부터 2시간30분 이내인 24:00 이전에 사망한 것이라면, 다음 날 11:30 검 안시에 시반이 고착된 부분이 보다 많아야 할 것이므로, 이 점에서도 위 위내용물이 저녁식사의 음식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끝으로 위 감정증인들의 당심에서의 증언에 의하면, 감정인들이 인용한 위 시간들은 위내에 음식물의 잔해가 남아 있는 경우에는 식사후 몇시간 이내로 보아야 한다는 의미일 뿐 그 시간이 경과되었다는 의미가 아 니고, 위내에 있는 음식물의 형태로 식사후 경과한 시간을 알수 있는 연구보고는 없으며, 일단 분비된 위액에 잠겨진 음식물은 사망후에도 부패 현상은 일어 날 수 있다는 것이므로, 결국 위내용물 검사만으로 식사후 몇시간 지나 사망한 것을 알 수는 없고, 따라서 위 위내용물 검사결과가 이 건에 있어 최수희가 6.12. 07:00경 아침을 먹고 07:30-07:40경 사망하 였을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사건 최수희의 위내용물만을 기준으로 최수희가 피고인이 집에서 나간 07:00 이전에 사망하였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④ 결국 위 감정결과만으로는 최수희가 6.12.07:00 이전에 사망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07:00 이후에 사망하였을 가능성도 배제되지 아니하므로, 위 감정결과만으로 피고인을 유죄로 단정할 수 없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