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 쓰는 데 팔이 아파서 자꾸 펜 종류를 바꾸고 있어요. 역시 만년필이 제일 힘이 안들어요. 도행씨 글씨 못 쓰는 거 아니예요. 수희가 잘 알아보고 있고 '처음으로' 도행씨 편지를 받았을 때 수희가 느낀 것은 '맨날 글씨 못 쓴다고 걱정하더니 잘 쓰네?'하는 것이었어요. 왜 자격지심 가져요?
내일 모레면 도행씨를 봐요. 만나서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할 지 걱정되요. 혼란스러울거야. 너무 너무 해줄 이야기도 많고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은데... 도행씨가 훈련이 그다지 힘들지 않다고 해서 정말 다행이예요. 도행씨는 원래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그래도 잘 견디는 편 아니예요?
'도행씨와 수희가 더 이상 주말 부부로 떨어져 지내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옵소서!!!' => 도행씨의 기도 내용 (주말마다 교회에서)
수희의 병원 계약은 사실 어느 누구의 충고도 받지 못했어요. 글쎄요... 도행씨와 수희는 같은 배에 탔고 상대편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이 있으니까 좀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텐데, 친정이나 선배들이나 책임성 있는 발언을 할 위치들은 아니었나 봐요.
그냥 결정했어요. 그다지 좋은 조건은 아니었지만 우선 집에서 가깝고, 수희 개업하면 집안일은 전혀 못 할텐데 시어머니가 해주실 것 같지는 않으니 친정어머니가 해줄 위치에 살아야 될 것 같고 개업은 해야 할 것 같고 등등... (파출부를 둘 형편은 못 되고).
개업이야기는 아직 전주에 이야기 못했어요. 이제 특별히 하지 말아야 겠다는 차원이 아니라 굳이 이야기가 안 나오네요.
도행씨 수희 사랑해줘요. 수희는 불안해요. 시댁사랑도 못 받고 있는데 도행씨마저 시댁편만 들고 수희를 따돌리거나 떨치면 어떻게하나 하고. 그래서 이렇게 개업등 모든 문제를 서두르는 지도 모르겠어요. 불안하고 항상 조금씩 두려워요. 살아갈 일들이.
쓰다보니 편지가 또 길어져서 예쁜 편지지에서 report지로 또 넘어갔어요. 2장에서 끝냈어야 하는 건데...
도행씨!! 수희를 믿고 밀어주고 수희를 감싸주고 편들어줘야 되요? 안그러면 으앙 --- 울어버릴거야.
도행씨는 수희거야. 수희생각 -> 도행씨 생각. 수희 의견 -> 도행's
1992 3/13 금요일 9:00 pm
ps. 도행씨에게서 온 편지들을 차곡 차곡 Clear file에 넣어두고 있어요. 평생 간직할 거야. 솔직히 도행씨가 수희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이 이런 외부적 조건이 없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다시 없는 기회니까 많이 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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