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고문 진실밝힌 대쪽검사

성고문` 진실 밝힌 대쪽 검사

▶ 게 재 : 중앙일보 2001년 08월 08일 19面 ▶
글 쓴 이 : [삶과 추억]

7일 62세를 일기로 별세한 김경회(金慶會)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
그는 초임검사 시절 선술집에서 죽마고우들과 함께 바라봤던 고향 마산의 파란 앞바다를 그리며 이 세상을 떴다. 고인은 생전에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돼야 한다" 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부인 배은령(裵恩聆.59)씨는 "남편의 뜻에 따라 수년간 죽은 사람의 몸을 씻어주는 등 염습(殮襲) 자원봉사를 해왔다" 고 말했다. 고인의 천주교 대자(代子)인 김경한(金慶漢.57)서울고검장은 "맏형 같은 듬직한 외모에 따뜻한 심성으로 후배들을 감싸줘 믿고 따랐던 분" 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암세포가 위에서 간으로 전이돼 끝내 눈을 감은 순간에는 가족들만이 자리를 지켰다.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내색하지 않아 주변 친지와 친구, 부하직원들은 그의 죽음을 전혀 예감하지 못했다. 누가 되기 싫다는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들도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고인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그는 마산에서 태어나 마산상고를 거쳐 부산대에 재학 중이던 1962년 제14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서울지검 남부지청 검사로 부임한 첫 해 그는 소신에 어긋나는 검사장의 지시에 항명해 그 후 지방 근무지를 전전해야 했다. 인천지검장 때인 86년에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부천경찰서 권인숙씨 성고문사건` 을 지휘하며 권력 핵심부의 축소조작 압력을 온 몸으로 막아냈다.
당시 경찰력으로 권력을 근근히 유지하고 있던 5공 정권은 그 해 5.3 인천사태 관련자들을 수사하던 부천서의 성고문 사건을 감추기 위해 혈안이 됐다. "경찰관의 성고문은 아예 없었던 일로 무혐의 처리하고, 일부 가혹행위는 있었지만 심각하지 않은 수준이니 기소유예 처분하라" 는 지시가 떨어졌다.
하지만 고인은 "모든 경찰의 조직력으로 사건을 은폐.조작하고 있지만 하나하나 깨나가겠다.
진실은 하나뿐" 이라며 후배 검사들을 격려했다.
그 해 7월 14일 조작된 수사결과를 언론에 발표하기를 거부해 `항명자` 라는 꼬리표를 달기도 했다.
그는 1년 뒤 대검 중앙수사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을 마무리하며 치안본부장을 구속했다. 또 부천경찰서 고문 경관을 구속해야 한다고 재건의했다.
진실을 향한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이같은 소신 덕분에 은폐될 뻔했던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은 만천하에 드러났고 결국 고문 경관이 구속됐다. 후배 검사들은 고인을 "한 번 시작한 일은 반드시 바른 위치에서 끝맺음을 하는 성격을 가진 분이었다" 며 "함께 있으면 말이 없어도 그 자체로 힘이 되는 선배" 라고 회상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자신의 죽음조차 바른 위치에 놓고 싶었던 듯 마지막까지 꼼꼼함을 잃지 않았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며느리, 천주교 대자들에게 남긴 고별인사에서 "이제 시련과 곡절, 아름답고 보람있었던 일들, 수많은 인연들을 접고 자유인으로 떠나려니 자성과 후회, 그리고 미안함과 감사 뿐이다" 고 썼다. 또 "나 이제 떠나려 한다. 먼 동이 트기 전 천지에 자욱한 안개 속 길을 자꾸만 뒤돌아보면서 미지(未知)의 저쪽을 향해" 라고 적었다.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고향바다를 눈에 넣고 그는 길을 떠났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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