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청소년
인터넷에 빠져드는 아이들
이주희| 인간 발달 복지 연구소 연구원
1999년, 한국 청소년 상담원에서는 우리 나라 청소년의 64%가 PC통신과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고 보고하였는데, 이 결과는 인터넷 보급률 세계 7위라는 상황과 함께 우리 사회에 특히, 청소년에게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경험이 이미 일상적인 생활로 자리하였음을 보여준다.
채팅, 머드게임과 같은 사이버 게임, 이메일 교류나 각종 동호회 참여 및 정보 탐색에 이르기까지 사이버 공간에서의 여러 가지 활동은 새로운 문화로 정착되어 가고 있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사이버 세계의 힘은 이 사회에 엄청난 변혁과 발전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런 사실과 더불어 상상을 초월하는 엽기 사이트, 자살 사이트, 음란물 사이트, 인터넷 매춘 등 각종 유해 사이트의 범람과 인터넷, 게임 중독으로 인해 잇따른 사건들을 접하면서 오늘도 우리 부모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자녀들을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조사 결과 인터넷에 실제로 몰두하는 주 연령층은 10대, 20대 청소년층이 대부분임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왜 유독 청소년들이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세계에 몰두하는 것일까? 그것은 사이버 공간만이 가지는 특성과 청소년기의 발달적인 특성 때문일 것이다.
사이버 공간은 제한과 책임이 따르는 현실 공간과는 다르게 거의 무제한적인 자유와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사이버 공간 안에서는 시작과 끝을 스스로 결정하고, 누구에게나 공평하며,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새로운 인격체로 변하거나, 동시에 여러 가지 인격으로 행동할 수 있다.
한편, 청소년기는 부모와 분리되어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하는 시기로서, 보다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행동하고 싶어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어른들의 간섭이나 통제 없이 마음대로 행동하고 싶어하고, 끊임없는 변화와 가능성을 추구하려는 청소년들에게 사이버 세계는 더없이 좋은 공간이 되어 준다. 또한, 부모에게서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과 접촉하고 가상의 공동체 속에서 강한 소속감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현실에서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 등은 그들이 사이버 공간에 동경과 호기심을 갖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사이버 공간은 청소년들이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한 갈등과 긴장을 해소할 수 있고 건전한 또래 공동체를 통해 다양한 인간 관계를 경험할 수 있는 자기 성장의 공간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이버 공간 내에서의 활동에 지나치게 탐닉함으로서 점차 현실과 유리되어 사회 적응이 어려워지고 현실의 인간 관계가 무너지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미국에서는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가족간의 의사소통 시간이 줄고, 사회적으로 접촉하는 사람이 줄었으며 심리적인 우울이 증가하는 경향에 대한 연구 자료가 발표되었다(Kraut, Lundmark 등 ’98). 또한, 국내외에서 폭력적인 TV나 영화, 컴퓨터 게임이 실제로 폭력성을 유발하는지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얼마 전, 미국 콜로라도의 총기난사 사건이나 우리 나라에서 발생한 엘리베이터 안 여중생 살해 사건, 또 불과 얼마전에 일어난 동생 살해 사건 등의 피의자가 모두 머드 게임과 같은 폭력적인 인터넷 게임에 탐닉하던 청소년들이었음이 밝혀졌다. 무엇이 우리 아이들을 이토록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일까?
물론, 이런 사건들의 원인을 전적으로 인터넷이나 게임 등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실제로 사이버 공간에서의 활동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여러 가지 심리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즉, 컴퓨터와 인터넷 환경의 특성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감각적인 자극만을 추구하게 되고, 클릭만 하면 언제든 금방 결과물이 주어지는데 익숙해지면서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점차 즉각적인 반응을 선호하게 된다. 따라서, 욕구에 대한 만족 지연이나 충동 조절이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 또한, 인터넷을 통한 다중 인격 체험으로, 지속적이고 안정된 인간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간접적, 부분적으로만 접촉이 이루어지는 가상적인 인간 관계만 추구하게 된다. 그 결과 현실 부적응은 심해지고 인터넷에 대한 집착은 더욱 강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급기야는 인터넷 중독(Internet Addiction)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 나라에는 사이버 문화에 대한 연구나 병리적인 현상에 대한 대안이 거의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건강한 인터넷 활동에 대한 여건과 기반은 아주 미약한 상태이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인터넷과 가상 공간에서의 활동을 무조건적으로 통제하거나 억압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이미 현대 사회는 가상공간을 떠나서는 생활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 가고 있고, 청소년들에게도 인터넷 공간은 중요한 사회적 환경이 되었다.
인터넷이 미래 사회를 이끌어 갈 우리 청소년에게 새로운 자기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기 위한 긍정적인 장(field)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국가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정책적인 차원에서는 모두가 특히 청소년들이 안전하고 올바르게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고, 사이버 문화가 건강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틀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학교 차원에서는 지역사회, 종교 및 시민 단체 등과 연계하여 부모나 교사,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올바른 인터넷 사용 지침을 교육하고 집단 상담이나 인간 관계 훈련과 같은 인성 개발 프로그램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아이들이 친밀감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소그룹 집단 활동을 활성화하여 현실적인 인간 관계의 기반을 튼튼하게 가꾸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모든 관계의 출발은 부모-자녀이다. 인터넷 중독의 배경에는 가정내에 늘 빈약한 부모-자녀 관계가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우울증이나 불안과 같은 심리적인 취약성이 존재하고 있었다. 세대간에 서로의 인식 차이를 극복하고 신뢰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청소년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문화와 그들만의 언어를 기성세대는 기성세대 나름대로 포용력 있게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더불어 부모-자녀간의 튼튼한 정서적 유대감은 내 아이를 모든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고, 또한 어려움에 대처하고 극복하도록 하는 건강한 자아 형성의 기반이 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