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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충무로 2가 11-2
TEL : 02) 747-8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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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적

국제가톨릭형제회는 여러 다른 문화적 배경에 생활하고 잇는 크리스찬들이 모여, 단체의 세가지 우선적인 방향 즉 신앙, 사회참여, 우주성을 깊고 조화롭게 실현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1) 신앙

평신도 사도직에 불리움을 받은 회원은 단체를 통하여 그리스도에 의해서 드러내 보이신 하느님의 말씀을 실현하고 또한 이미 우리 가운데 현존하고 있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일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2) 인간의 해방을 위한 사회참여

인간의 해방을 위한 일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 신앙의 기본적인 의무이며 이러한 삶은 우리 신앙을 성장시켜 준다. 회원은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억압받는 자들과 연대감을 이루며 보다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려는 일에 깊이 참여하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이와 같은 사명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나간다.

3) 우주성

A.F.I 는 국제단체이며 우주적인 정신으로 살기를 원하는 단체이다. 우주적인 정신으로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요구하는 바이며 이는 신앙인의 생활한 힘이 된다. 우리들의 구체적인 참여가 시간과 공간으로 제한 되어있는 삶일지라도 인간의 해방과 민족들의 해방을 위한 노력에 깊이 관여될 때 그 삶은 바로 우주적 차원의 의미를 지닌다.

회원 상호간의 마음을 열고 서로 받아들이는 자세, 다른 민족, 다른 종교, 다른 문화, 그리고 자신과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열린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가 살고저 하는 본질적인 특성의 하나이다. 이는 우리가 공동으로 채택한 우선적 방향을 활동과 직업생활을 통해 표현하고 실현해나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모든 다양함을 단체의 풍요로운 점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하며, 다양성은 풍요로움의 원천이 되는 동시에 긴장과 분열을 일으킬 위험이 근원이 되기도 하므로 서로 신뢰하고 단체 생활에 깊이 참여함으로써 구체적으로 균형을 찾아간다.

2. 정신

회원들은 복음정신을 "전진상(全眞常)"으로 요약하신 례브 신부님의 선교정신을 따라, 전진상 정신을 중요한 생활 지침으로 삼고 있다.

전(全)은 전희생(全犧牲), 즉 온전한 자아 봉헌을 뜻한다. 그리스도와 완전히 일치된 생활을 하기 위해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포기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진(眞)은 진애인(眞愛人), 즉 참다운 사랑으로써 이웃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 참다운 사랑은 온전한 자아봉헌이 철저히 실현된 다음에야 비로소 가능해 질 것이다.

상(常) 은 상희락(常喜樂),즉 끊임없는 기쁨으로써 항상 어디서나 즐겁고 기쁘게 생활해 감으로써 크리스찬의 기쁨이 주위에 전파되도록 하라는 것이다.

3. 사업내용

1) 분류

회원들은 복음의 요구와 사회의 필요에 응답하기 위하여, 각자가 처해있는 환경안에서 자신의 직업과 삶을 통하여 개인 또는 공동의 사도직을 수행한다. 회원들의 활동분야를 다음과 같이 분류해 볼 수 있다.

- 사회복지 분야(의료, 노동, 아동, 교구사회복지 및 적십자 활동)
- 교육분야(신앙, 학교, 여성교육, 상담)
- 사회운동분야(생명, 도시빈민, 노동, 인권, 여성운동, 한살림)

2) 공동으로 맡고 있는 기관


- 전진상 교육관 (명동 소재, 1956~ )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여대생 기숙사 운영을 하고 있으며 성인들을 위한 각종 교육, 문화프로그램을 주관하는 센터 역할을 해왔다. 시대의 요청에 따라 근래에 와서는 정신건강, 전인교육을 위한 상담과 예방교육을 여러 계층의 사람을 위해 실시하고 있다.

- 전진상 사회 복지관 (전 안양 근로자 회관, 안양 소재. 1969~ )
남녀  근로자를 위한 기숙사와 근로자의 의식교육을 위한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주관하는 센터역할을 해오다가, 1998년 2월 1일 부터 회관을 개칭하게 되었고 , 노인들과 행려자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 피정 및 숙박교육을 위한 센터, 가정 폭력 상담소, 이주(외국인)노동자의 집, 한국 감마 모델 연구소, 성인들을 위한 배움터 운영을 하고 있다.

- 시흥 전진상 복지관 (의원)  (시흥소재, 1975~ )
본 복지관의 주사업은 의료 사회사업이며, 아울러 지역사회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데 함께 참여함으로써 복음을 세상에 증거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사회 사업부 :    -상담실                         -노인 재가복지
                       -무료 유치원                  -타기관과 연계활동
                       -무료 공부방                  -후원회 운영
                       -장학사업                       -봉사자 관리

진료부(전진상 의원) : 사회 사업부에서 의뢰하는 영세민들 위한 진료,
                                 가정 호스피스 활동

약국 (전진상 약국) : 전진상 의원 진료 환자에 대한 투약을 하고 내방환자
                              상담 및 교육을 실시하고 이익금 전액을
                               본 복지관 활동비로 환원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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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역사

본 회는 1937년 이본 뽕슬레(Yvonne Poncelet)애 의해 벨기에에서 창설되었다. 창설 초기의 목적은 그 당시 중국 교회를 위해 적극 활약하고 있던 레브 신부의 선교정신의 영향을 받아 중국에 가서 봉사하려는 데 있었다.

'중국 교회는 중국인들의 힘으로 건설되어야 한다'는 일념 아래 그 자신이 중국 국적으로 귀화하면서까지 중국 생활에 깊이 적응했던 레브신부는 중국 교회에 방인 주교단을 탄생시키는 등 방인 교회의 발전은 물론 국가 발전에도 크게 기여함으로써 현대 선교의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중국에서는 중국인들과 더불어', '아랍에서는 아랍인들과 더불어', 일상생활을 통하여 그 민족의 문화와 사상 속에 깊이 동화하지 않고서는 결코 진정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할 수 없다는 그의 가톨릭적이고 우주적인 선교사상을기반으로 하여 SAM (벨기에 외방 선교회)이 창설된 데 이어서 같은 이념과 정신 아래 미혼 여성들로 구성된 본회 A.L.M(Auxiliaries Laics Missionnaires, 평신자 선교회)이 창설되었다.

1945

2차 세계 대전으로 주춤했던 회원모집과 선교지방으로의 회원 파견이 전쟁이 끝난 1945년갑자기 활기를 띠게 된다.

1946

회원 교육과 조직강화 등 내실을 기하는 동시에 1946년에는 아프리카의 콩고와 중국으로 2개 팀이 파견되었다

1947

드디어 1947년 1월 벨기에의 말린(Malines)교구장, 반뢰이(Mgr. Van Roeg)대주교는 본 회를 교회의 평신자 선교회로서 인준하였다.

회원들은 교구장의 지휘아래 교구에서 요청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해야 했으며 대개의 경우 직접 선교보다는 평신자 여성으로써 할 수 있는 교육과 의료, 사회사업 등 그 지역 개발에 필요한 분야, 즉 후진국 여성들의 모자 보건, 양육법, 양재나 가사 등 여성들의 기초교육과 의식 계발을 비롯하여 고등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에 이르기까지 그 지방 교회가 발전하는 데 필요한 기초 작업을 주로 맡아 왔다.

1956

1956년 여름 개최되었던 총회는 그동안 비대해진 단체를 재정리하고 새로은 방향을 제시한 중요한 역할을 한 총회이다. 이미 유럽을 포함한 아시아, 아메리카 등 약 15개구에서 모여든 회원들이 브뤼셀의 국제 수련소에서 교육을 마치고 세계 40여개국에 파견되어 있었으며, 회원들의 활동범위도 초창기의 단순한 동기를 크게 벗어나 잇었다. 보다 다듬어지고 업격히 규제된 회칙은 국제 단체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단체의 명칭은 A.F.I.C.(Auxiliaries Faminines Internationales Catholique)로 개정하였다. 그리고 같은해 교황청 포교성성으로부터 삐아 유니오(PIA UNIO)로 공식 인준을 받게 되었다.

한국에 첫 팀이 진출한 것은 1956년 3월 이었다. 그당시 성울 교구의 교구장이었던 노기남 대주교의 끄질긴 요청으로 독일인 1명과 이탈리아닌 1명 벨지움인 1명이 한팀이 되어 불시에 파견되었던 것이다. 이 팀이 처음 위임받은 일은 여대생을 위한 기숙사의 운영을 중심으로 한 여성 교육이었다. 주교의 원의에 따라 명동 주교관 곁에 (현 전진상 교육관) 작은 일분식 가옥에 지방 여대생을 중심으로 하는 기숙사를 개설하였다. 여대생 기숙사는 파리, 로마, 밀라노, 시카고 등지에서 외국 유학생들을 상대로 하여 인재 양성에 협력하는 목적으로 단체가 시도해온 중요한 활동 중의 하나였다.

1962

얼마전까지 명동 여학생관으로 알려져 온 현 전진상 교육관의 건물이 1962년 2월에 준공된 후 기숙사생들의 생활 교육은 물론 서울 시내 각종 평신자 활동 단체를 탄생시키는데 모체 역할을 해왔다. 즉 가톨릭 학생회 J.O.C., 걸스카우트, 부인회 등 회원들은 여러 활동단체의 한국 진출을 도왔으며, 밖으로는 일반대학 강사로 나감으로써 젊은이들과 교육 현장에서의 접촉을 시도했다.

1962년 5월 죠 윌머(G. Wilmer)총장의 한국 방문은 한국 지역 발전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 당시 국제본부에서 수련을 끝내고 서약한 한국인이 3명, 수련 준비차 언어를 배우고 있던 지원자가 2명 있었다. 국내에서는 5-6명의 지원자들이 입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1963

다수의 한국인 지원자들이 겪는 ,국제 수련소에서 수련받을 때에 야기되는 언어 문제나 여러 가지 적응의 문제 등을 참작하여 우선 초기 1차 수련은 본국에서 받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해 10월 부터 몇몇 지원자들이 입회하게 되었고 한국에 있던 외국회원 1명과 브뤼셀 국제본부에서 수련을 담당하고 있던 한국 회원이 귀국하여 1963년 부터 서울에서의 첫 수련이 본격화되기 시작되었다.

1964

1964년 7월 5일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축일날 한국인 4명이 첫서약을 하게 되었고, 같은 날 국제 수련소에서도 한국인 2명이 첫서약을 함으로써 갑자기 불어난 한국인 증가에 온 세계의 회원들은 찬사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 증가되는 지원자들의 수련을 위해 1964년 11월 현 삼선교의 가옥을 구입하여 수련소를 설치하였다.

삼선교의 수련소는1967년 9월에는 아시아 지역의 수련소로 승격되어 일본인 회원의 수련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1966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1962-1964)준 새로운 교회관의 조명아래 단체는 1966년 중요한 기록을 남길 총회를 열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급변한 사회의 구조와 질서문제, 기계 문명이 빚어낸 선진국들의 정신적 타락과 사회적 혼란에서 오는 미국에서의 흑백 인종 문제등 다원화된 현대사회 안에서 회원들이 직접 겪은 체험은 이 총회에 최대한 반영되었을 뿐 아니라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 결과 이총회는 기존의 중앙집권식 단체의 구조를 지역 단위로 독립시키는 지역 자체로 변경시켰다. 대개 국가 단위로 구성된 각 지역은 회원 교육을 비롯하여 재정면 등 제반문제를 스스로 조직하고 해결하는 방향으로 하게 되었다.

획기적인 조직 변화를 가져오게 된 동기는 첫째, 아프리카, 중동, 인도,등 가톨릭 선교사들이 활동하는데 많은 불편을 주는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회원들로 하여금 보다 자유롭게, 깊이 그 사회속에 침투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방법적인 면에 있었다.그러나 더 중요한 동기는 단체의 이념에 있었다고 볼 수있다. 모든 국가와 민족이 지닌 문화와 종교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 지역 사회가 스스로 성장하고 발전하는데 협력한다는 단체의 봉사 정신은 세계 각국, 각 분야에 산재한 회원들에게 더 이상 획일적인 지시나 요구를 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던 것이다. 따라서 브뤼셀의 국제 수련소는 자동적으로 폐쇄되었다.

1968

그리고 국제 단체를  대표하여, 공식업무를 수행하고 각 지역회원들을 조정하는 새로운 운영회원과 국제 비서처가 1968년 스위스 제네바에 설치되었다.

1969

서울에 있던 수련소도 1969년 여름 아시아 국제모임(서울에서 개최)에서 일단 기존 수련제도를 폐지하기로 결정하는 한편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논의하였다.

이제 겨우 발돋움하기 시작했던 한국 지역은 국제 단체의 추세로 말미암아 아무런 준비도 없이 독립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어려움도 많았지만 항상 시련과 더불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은총을 함께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회원들로 하여금 '모든것은 하느님께로부터 온다'는 깊은 믿음과 A.F.I.는 '목표를 향해 곧장 날아가는 화살과 같아야한다.'는 창설자의 교훈을 되새기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였다.

서구의 다른 지역에 비해 한국지역은 비교적 안정된 환경에서 발전하고 있는 교회와 아직도 발전도상에 있는 이 사회안에서 단체의 역할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깊이 통감하면서 나름대로 균형을 찾아가고자 노력하고 있다.한국 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지원자들의 견고한 기초교육은 물론 대중의 의식교육을 위한 사업, 빈민들이나 근로자들을 위한 복지사업, 의료사업, 초등학교를 비롯한 대학사회에서의 직접교육을 담당하는 한편 평신자나 젊은이들의 정신교육을 위해 활약하고 있으며 교회학교(가톨릭 교리신학원)에서 선교사 양성교육도 다년간 해 오고 있다.

1970년대

1970년대 중반부터 미국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시도했던 남성회원제도가 한국지역에서도 이루어졌다. 한국 지역의 회원기준은 남녀 독신자로서 혼성그룹이 되었다.   따라서 단체의 명칭도 국제 가톨릭 형제회  A.F.I.(Association   Fraternelle  Internationalle)로 개칭되었다.

1980년대

198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본 단체는 국제적으로 유럽국가들의 이민문제, 동구권의 개방을 위시한 공산국가들의 전환,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공해문제와 환경보존, 인권문제 등에 주요한 관심을 가져왔다. 현재 스위스의 제네바에 국제 본부를 두고 있는 본 단체는 국제연합 산하의 비정부 기구인 UFER(Union Fratenelle Entre Race)와 제네바에 있는 다른 국제 인권단체에 가입되어있다.

한국에서도 회원들은 1990년에 들어와서 외국인 노동자, 남북통일문제, 에이즈 환자 문제, 호스피스 활동, 각종 사회문제에 따른 상담, 여성교육, 환경보존운동에 역점을 두고 활동해 오고 있다.

1992

각국의 회원들이 모인 가운데 단체의 국제 평가모임을 수원 아론의 집에서 가지면서, 현시대에 적합한 단체의 역할을 연구 토론하였다.

1995

벨기에의 바늬 (Banneux)에서 각국의 수련책임자와 수련자들이 국제 수련모임을 통해 젊은 회원들의 새로운 방향의 교육을 연구하는 중요한 기회가 되면서 많은 회원들과의 친교모임이 되는 형제애를 느낄 수 있었다.
한국 수련자 3명은 미사중에 많은 회원들 앞에서 서약식을, 또 5명의 회원은 A.F.I.서약 50주년 기념식을 갖는 뜻깊은 행사를 치루었다.

1996

1996년은 A.F.I한국 진출 40주년이 되는 해로서, 레브신부님의 발자취를 따라 중국 성지순례행사가 이루어졌다. 그로인하여 앞으로의 북방선교를 준비하기 위해 중국, 대만, 러시아에서 3명이 국제경험을 하게 되었다.

1997

한국 지역에서는 단체쇄신을 위한 연구결과 현실에 맞고 단체생활을 보다 활성화할 수 있는 조직으로 개편하여,동그라미 유니트, 동서 유니트, 온누리 유니트로 구성하고 보다 충실한 생활을 하고 잇으며 모두 한국지역 회원으로서, 개인으로나 공동으로 세상안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삼선교의 수련소는1967년 9월에는 아시아 지역의 수련소로 승격되어 일본인 회원의 수련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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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임원 프로필

지춘애.gif (10857 bytes)

직 위

회 장

성 명

지춘애

본 명

그리스티나

본 당

혜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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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 위

운영위원

성 명

윤순녀

본 명

수산나

본 당

상계동

 

박상인.gif (8857 bytes)

직 위

운영위원

성 명

박상인

본 명

마리아

본 당

과천(수원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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