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의 밤





1.의의와 취지


순교자의 밤에 대한 의의와 취지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순교'라는 단어의 명확한 의미규정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순교란 말은 "자기가 믿는 종교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행동"1), "신앙을 위하여 죽음을 당하는 일"2)을 의미하며 '증인'을 뜻하는 희랍어 'μαρτυ?'에서 유래한 말이다.

본래 '순교'와 '순교자'의 원어인 'μαρτυριον'과 'μαρτυ?'는 단순히 증언과 증거자를 의미했지만 이 단어들이 그리스도교에 수용되면서 그 의미가 본질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증거, 증언만을 뜻함이 아니라 피흘림을 통한 신앙의 증거를 의미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적 순교는 엄밀히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즉 실제로 죽음을 당해야 하고, 그 죽음이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진리를 증오하는 자에 의하여 초래되어야 하며, 그 죽음을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진리를 옹호하기 위하여 自發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이상의 세 가지 조건을 갖춘 순교를 성스럽게 그리고 아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본다. 순교자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실제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 다음은 순교자가 생명을 빼앗는 폭력에 반항하지 않고 그리스도처럼 자기 자신을 천주 성부께 봉헌 한다는 지향이나 확신을 가지고 죽음에 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을 산 한국 순교 성인 성녀들을 특별히 공경하고 그 행적을 기림으로써 궁극적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하느님의 구원 은총에 감사하는 달(9월)을 한국 천주교회는 일찌기 한국 순교복자 성월로 정하여 순교 복자들을 공경하여 오다가 1984년 5월 6일 103위 복자 모두가 시성됨에 따라 1984년 6월 28일에 있었던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상임위원회에서 한국 순교자 성월로 명칭을 바꾸었다.

순교자 성월이 9월로 결정된 것은 순교자들의 순교일이 9월에 가장 많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인은 언제나 순교할 준비를 갖추고 살아야 하지만, 순교자 성월 동안에는 특히 선조들의 순교정신을 본받고 생활하면서 신앙 쇄신의 계기로 삼고자 노력하여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순교자의 성월인 9월에 순교자의 밤을, 한국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 103위 순교 성인 호칭기도를 바치고 적당한 독서와 복음을 봉독하고 그에 따른 강론을 할 수 있으며 또한 헌화, 헌시, 분향 등으로 다채롭게 꾸밀 수 있다.

그러나 이 행사는 원래의 취지에 따라 참여자 개개인이 현세에서 순교자의 순교 정신으로 현대적 의미로서의 순교의 삶을 다짐하고 이러한 뜻을 하느님께 봉헌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줄 수 있어야 한다.

2.행사전 고려사항


A .시기의 문제


먼저 어느때 순교자의 밤 행사를 실시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9월 초에도 할 수 있고 9월 말에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일인 9월 16일에 할 수도 있고 한국순교자 대축일인 9월 20일에 거행할 수도 있다. 모두 의미가 있는 날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전 신자가 참석할 수 있는 날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 아무리 의미가 있는 날이라 해도 극소수의 신자만이 참석할 수 밖에 없다면 그 본래의 취지와 목적에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9월 중 공동체의 대다수가 참석할 수 있는 날을 선택하여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B. 장소의 문제


장소의 문제는 순교성지를 관할하고 있는 성당을 제외하고는 성모의 밤 행사와는 달리 그리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성당내에서나 성당마당에서나 모두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한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모든이가 순교자의 밤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순교자의 유해를 모셔둔다든지, 흡사하게 만든 형틀과 형구, 그리고 103위 순교성인의 그림등을 활용하여 분위기를 조성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공동체의 전 구성원들에게 오전에 가까운 근교의 성지를 순례하도록 권장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C. 내용의 문제


내용의 문제에 있어서는 말씀의 전례를 중심으로 하느냐 아니면 우리의 봉헌예절을 중심으로 하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두가지를 모두 어색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1부와 2부로 나누어서 하는 것도 좋겠다. 왜냐하면 현 교회에서 순교자의 밤이 두가지 의미로 시행되기 때문이다. 즉 순교자의 밤을 성모의 밤과 흡사하게 말씀의 전례를 중심으로 하기도 하지만 어떤 곳에서는 예술제 형식으로 시행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1부는 말씀의 전례, 2부는 순교자를 현양할 수 있는 예술제 형식도 바람직 하리라 생각된다. 한가지 순교자의 밤 내용 중에 순교자들의 삶을 알 수 있는 프로그램을 삽입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예를 들면 순교자들에 관계된 영화를 상영한다든지 아니면 순교극을 공연한다든지) 왜냐하면 한국교회의 신자들 대다수가 순교자들의 삶을 자세히 모르고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순교자들에 관한 막연한 인식의 상태나 무지의 상태에서 순교자의 밤 행사는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3.사목적인 실례
( 수원신학교 )

1.시작성가
------------------------------------------------------------------------------------------------------ 다같이
2 .개회기도 및 개회사
------------------------------------------------------------------------------------------------------ 주례자
3.103위 순교성인 호칭기도
------------------------------------------------------------------------------------------------------ 다같이
4.독서
------------------------------------------------------------------------------------------------------ 독서자
5.응답성가
------------------------------------------------------------------------------------------------------ Cantores
6.복음
------------------------------------------------------------------------------------------------------ 주례자
7.강론
------------------------------------------------------------------------------------------------------ 주례자
8.묵상
------------------------------------------------------------------------------------------------------ 5분
9.헌시
------------------------------------------------------------------------------------------------------ 대표
10.헌화
------------------------------------------------------------------------------------------------------ 대표
11.분향
------------------------------------------------------------------------------------------------------ 다같이
12.중창 또는 합창
------------------------------------------------------------------------------------------------------ Cantores
13.순교자께 드리는 기도
-------------------------------------------------------------------------------------------------------같이
14.강복
------------------------------------------------------------------------------------------------------ 주례자
15.마침성가
------------------------------------------------------------------------------------------------------ 다같이

 

4.순교자의 밤 시안

제1부 말씀의 전례
시작성가 (순교자들에 관계된 것이면 어떤것이든)
예절에 대한 취지 설명
독서 (순교자들의 서간)

순교자 김대건 신부의 편지 중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천주의 명령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모든 것이 천주께로부터 오는 상이나 벌입니다. 박해까지도 그의 허락으로만 오는 것이니 참을성 있게 또 천주를 위하여 견디십시오.

다만 당신 교회에 평화를 돌려 주시도록 눈물로 간청하십시오. 내 죽음은 여러분에게 타격이 될 것이고 여러분의 영혼은 슬픔속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천주께서는 여러분에게 나보다 나은 목자들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슬퍼마시고 천주를 큰 애덕으로 마땅하게 섬기도록 힘쓰십시오.

애덕으로 결합하여 있읍시다. 그러면 죽은 다음에 우리는 영원히 결합하여 있을 것이고 영원히 천주 대전에서 누릴 것입니다. 천만 번 그렇게 하기를 바랍니다. 순교자 이문우 요한의 편지 중 모든 것을 아시는 천주 앞에서 왜 불안해 할 필요가 있겠읍니까.

천주께서는 그 무한한 자비로 우리를 위하여 당신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고, 사람이 되신 천주성자는 33년 동안 수많은 괴로움을 당하시고 세세만대에 모든 백성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쏟으셨읍니다.

그런데 저는 불행하게도 일생동안에 그분을 찬미하고 그분에게 감사드릴 줄을 몰랐읍니다. 저는 천주를 위하여 털끝만한 덕행도 할 용기가 없었읍니다. 그보다도 변덕을 따라 천주의 마음을 상해드리고 그분을 배반하지 않고 지내는 날이 하루도 없었읍니다. 저는 그저 허송세월만 할 뿐이었읍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다지도 어리석고 배은망덕할
수가 있었는지요.
응송(천주가사 중 사향가) 1) 어화우리 벗님네야 우리본향 찾아가세 동서남북 사해팔방 어느곳이 본향인고

2) 복지로나 가자하니 모세성인 못들었고 지당으로 가자하니 아담원조 내쳤구나

3) 부귀영화 얻다한들 몇해까지 즐기오며 빈궁재화 만타한들 몇해까지 근심하랴

4) 이러하온 풍진세계 안거할곳 아니로세 인간영복 다얻어도 죽어지면 허사되고

5) 세상고난 다받아도 죽어지면 고만이라 우주간에 빗겨서서 조화묘리 살펴보니

6) 태읍지곡 그아니며 찬류지소 이아니냐 아마도 우리낙토 천당밖에 다시없네
복음 루가 9,23-26 또는 마태 10,26-33
강                    론
묵상      (5분정도)
분향 (전 신자들 모두 참여)
103위 순교 성인 호칭기도(부록 참조)
제2부 (예술제 형식의)봉헌예절

시낭송, 중창 또는 합창, 악기 연주, 순교극 공연 등을 시간과 대상에 따라 각 단체별로 봉헌할 수 있다.
순교자들을 통한 우리의 기도 (마침기도로서0
마  침  성  가
순교자의 밤 강론

루가 9,23-26

순교자의 밤을 맞아 우리 모두 성지순례를 떠나도록 하겠읍니다. 모두 눈을 감아 주십시요.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우리 마음의 성지순례를 떠나도록 하겠읍니다.

제가 읽어드리는 것을 마음속으로 조용히 그려보도록 하십시요. "오늘은 포졸들이 우리 동네에 들이 닥쳤읍니다. 박해를 피해 정든 고장, 일가친척, 관직, 명예, 재산 다 버리고 이곳 첩첩산중에 어렵사리 정착했는데……, 포졸들이 우악스럽게 손을 묶습니다.

가재도구는 다 팽개쳐지고 아이들은 급작스런 상황에 울기만 합니다. 피난 살이에 남아 있는 거라고는 얼마되지 않지만 그나마 쓸만한 것은 포졸들이 다 챙겨갑니다.

이제 어떻게 될지는 하느님만이 아십니다. 감옥에 들어왔읍니다. 두세평 남짓한 어두컴컴한 방에 십여명이 함께 있으며 그가운데는 젖먹이들도 있읍니다.

상처가 곪아 터지는 냄새와 바닥에 깔린 짚단이 썩는 냄새가 이루 말할 수 없읍니다. 머리를 가누기에도 힘든 큰 칼과 발에 채운 족쇄 때문에 잠을 청하기는 커녕 그냥 앉아 있기에도 힘이 듭니다.

그러나 가장 힘든 것은 굶주림과 목마름입니다. 한줌씩 잡히는 이를 잡아먹는 이들도 있고 썩은 짚단이나 상처에서 나오는 구더기를 잡아먹는 이들도 있읍니다.

어떤 이는 흙을 한줌씩 집어 먹다가 손가락 끝이 헐어 피가나게 되자 그 피딱지를 뜯어 먹기도 합니다. 언제 이러한 고통이 끝나게 될지 하느님만이 아십니다. 오늘은 관헌에 끌려 나갔읍니다.

관장이 배교하라고 소리칩니다. 못하겠다고 하자 무시무시한 고문이 시작됩니다. 곤장을 치기도 하고 주뢰를 틀기도 합니다. 천장에 매달아 놓고 때리기도 하며 바닥에 유리를 깨뜨려 놓고 그위에 무릎을 꿇린다음 짓누르기도 합니다.

줄을 다리에 감은 다음 양쪽에서 당겼다 놓았다 하여 줄이 살속을 파고 들어가게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고문중에 뼈가 부러지는 것은 예사이고 창자가 나오거나 골수가 나오는 이들도 있읍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든 것은 가족을 대신 위협하는 것입니다. 아이들,부인 혹은 남편, 부모를 대신 죽이겠다고 위협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배반할 수는 없읍니다. 드디어 처형장으로 끌려갑니다. 두 귀에는 화살이 꽂혀있읍니다. 거리에는 많은 구경꾼들이 나와 있읍니다. 우리를 향해 저주를 퍼부으며 욕을 하기도 하고 돌을 던지기도 하며 침을 뱉기도 합니다. 한강변 모래사장에 도착했읍니다.

머리를 숙이지 못하게 머리카락을 나무에 매답니다. 망나니가 큰 칼을 휘두르며 춤을 춥니다. 절친한 친구 하나가 망나니에게 제발 한칼에 베어 달라고 돈을 주는 것이 보입니다. 망나니가 칼을 크게 치겨듭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나려나 봅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시작인 것을 나는 압니다." 성지순례 잘들 다녀오셨지요? 지금 읽어드린 것은 제가 마음대로 지어낸 것이 아니라 여러 순교자들의 편지를 편집하여 한 사람에게 일어난 일인 것처럼 모아 놓은 것입니다.

여러해 전에 우리 사회에서 "족보찾기 운동"이 여러 계층으로부터 큰 호응을 불러 일으키며 전개되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자기 존재의 근원에 대한 인식없이 너무 편리위주로, 그리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온데 대한 반성이 외적 운동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무가 뿌리없이 존재할 수 없듯이, 어느것 하나 태어남을 받지 않은 것이 없듯이 인간도 자기 존재의 근원과 뿌리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자기 존재의 근원과 뿌리에 대한 깊은 자각 없이는 자신의 현존재 또한 위태롭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교회안으로 시선을 돌려봅시다.

우리 가톨릭 신앙인의 뿌리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서 오늘날 우리가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읍니까? 바로 우리의 순교자들입니다.

온갖 환난과 괴로움속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바칠지언정 하느님을 배반하지 않았던 바로 이 땅의 순교자들입니다. 반쯤 떨어진 목을 치켜들고 거기서 흘러나온 피를 두손으로 받쳐들고서도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었던 분들, 아들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위협하는 포졸에게 부모로서 쓰린 가슴을 부여잡고 그래도 배교할 수 없다고 하던 분들, 산채로 묻으려고 자신들위로 흙을 퍼붓는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용서의 기도를 올리시던 분들, 굶주림과 목마름 속에서도 차라리 바닥의 흙을 한줌 줏어먹을 지언정 하느님을 배반하지 않았던 분들, 유일한 식량이라고는 곪아터진 상처에서 나오는 구더기와 썩어 문드러진 짚단이 전부였던 그분들, 그리고도 배교하기는 커녕 같이 잡혀있던 교우들을 서로 격려하던 그분들, 하느님께 대한 열정으로 모든 고문과 역경과 죽음의 위협까지도 물리쳤던 그분들, 바로 우리에게 신앙을 전해주신 분들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전해주신 분들이 부모님들이라면 자신들의 생명을 바쳐 신앙을 전해주신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우리에게 무엇이며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가 너무 사치스런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어떻게 해서 우리에게 까지 전달된 신앙인지에 대해 많은 반성이 있어야 하겠읍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세태가 변했다는 이유로 우리의 순교자들을 우리 삶의 자리에서 너무 뒷전으로 밀어낸 것은 아닌지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하겠읍니다. 그분들의 삶을 가까이 느낄 필요가 있읍니다. 그분들의 신앙과 순교정신을 오늘날 되살릴 필요가 있읍니다.

순교자들에 관한 서적을 많이 읽고 성지순례를 많이 하고 순교자 현양 대회에 빠지지않고 참석하며 순교자들이 아니면 신앙생활을 못할것처럼 떠들고 다닌다고 해서 순교자들을 현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속에서 순교자들의 삶을 살지못하고 그분들의 정신을 기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알맹이 빠진 허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그마한 일상에서 순교하는 삶, 모든 것안에서 하느님을 제일 먼저 생각하고 그분을 위해 많은 자리를 비워 놓으며 그분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는 신앙생활, 바로 오늘날의 순교라고 할 수 있겠읍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세로 신앙생활을 할때 그 옛날 우리의 순교자들이 목숨바쳐 지킨 신앙을 우리도 우리의 후손들에게 퇴색됨 없이 전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순교자 영성 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