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히 명맥 잇는 3D업종 법의학자들… 잘못하면 ‘과학 살인자’될 수도

한겨레21 1999년 01월 14일 제241호




(사진/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실. 법의학자들은 하루종일 악취가 코를 찌르는 근무환경에서 일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 법의관들은 오전에는 칼을 들고 오후에는 펜을 든다. 오전에는 부검을 하고, 오후에는 ‘부검 감정서’를 쓰는 게 하루 일과이다. 일반인들이 가까이 하기 꺼려하는 변사체가 이들이라고 반가울 리는 없다. 아무리 경험 많은 법의관이라 해도 부패가 심한 주검을 접할 때는 자연히 얼굴이 찡그려진다. 하지만 주검에 남아 있는 상처를 살피거나 내부 장기를 열어보아 자살인지 타살인지 또는 사고사인지를 규명하고, 가능하다면 사인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게 이들에게 부여된 의무다.

검시엔 무한한 책임

법의관들은 칼보다는 펜을 들 때가 더 힘들다고 말한다. 시체 1구 부검에 걸리는 시간은 짧게는 20분에서 길게는 2시간이 걸리지만 감정서를 쓰는 데는 무려 2달이 걸릴 때도 있다. 그만큼 조심스럽다. 잘하면 억울한 죽음을 밝혀 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애먼 사람에게 혐의를 뒤집어씌울 수도 있다. 법의관들은 자신들이 언제든지 ‘과학 살인자’(사이언스 킬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난 군사정권 시절에는 정부의 협박과 회유로 인해 마치 목에 칼이 겨눠져 있는 심정으로 감정을 한 적도 있다고 법의관들은 회고한다. 그러나 이들은 “지난 87년 박종철씨 사건 때 황적준 당시 법의학과장(현 고려대 교수)이 고민 끝에 경찰이 발표한 단순 쇼크사를 뒤집고 고문치사라고 발표한 이후 정권에 휘둘린 적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은 오판의 개연성은 여전히 상존한다. 실제 그동안 오판 사례가 있었다는 점을 이들도 시인한다. 그래서 법의관들은 밤을 새며 책이나 인터넷과 씨름하고 동료 법의관은 물론 관련 사인(死因)에 정통한 의사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한번 감정결과를 내리면 동료 법의관들이 이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하지 않는 게 이 세계의 불문율이다. 집도를 맡았던 법의관만큼 감정 결과에 신중을 기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또 집도 책임자가 아닌 다른 사람은 부검이라는 1차 감정이 아닌, 사진이나 서류 등을 통한 2차 감정을 하는 데 그친다는 이유도 있다. 그래서 법의관이 한번 감정 결정을 하면 국과수 법의학과장이나 소장 등 상사라 하더라도 쉽게 이를 번복할 수 없다. 이한영(41) 법의학과장은 “의혹이 있을 경우 1차로 서류를 담당 법의관에게 반송할 수 있고, 그래도 담당 법의관이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 마지막으로 법의관 전체 회의를 열어 다른 법의관들이 의견을 개진한다. 그러나 이때도 집도 책임자가 자신의 주장을 고수하면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집도 법의관의 감정 결정을 존중하지만 해당 법의관은 그 결정에 대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이른바 ‘감정 실명제’다.

우리 현실에서 법의관도 어엿한 의사이지만 의료계 안에서는 3D업종으로 분류된다. 더구나 급여 수준은 개업의에 비교할 바가 안 되고 대학 병원의 의사들에 비해서도 3분의 2 수준이다. 의사의 신분으로 사실상 검사의 지휘를 받는 구조도 달가울 리 없다.

이런 근무환경 때문에 국과수를 직장으로 선호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난 97년 6월 국과수 법의관 중 4명이 다른 직장으로 옮기면서 3명을 새로 채용했지만 이 가운데 병리학을 전공한 이는 1명뿐이었다. 법의학의 기초인 해부병리학 전문의 중에서 뽑는 게 정상이지만 희망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국과수는 조만간 다시 인력난에 시달릴 조짐이다. 올 초에 강신몽 소장이 가톨릭 의대 교수로 자리를 옮기고, 내년에는 서중석 법의관마저 중앙대로 이직할 예정이다.

“20년 동안 제자는 고작 2명”

대학에서도 법의학 분야는 인기없는 변방지대다. 법의학을 전공한 의사는 국과수와 고려대, 서울대, 경북대, 전남대, 전북대 등 다섯개 의과대학 법의학 교실을 통틀어 20여명 안팎이다. 게다가 대학에서는 감정을 할 기회도 많지 않다. 국과수가 공신력을 문제삼아 부검을 거의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적준 교수는 “평소 어느 정도 부검을 해야 연구가 되고 법의학도를 양성할 수 있는데 지금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서울대 이윤성(법의학) 교수는 “20년 동안 받은 제자가 고작 2명뿐이다. 법의학은 재미있고 중요한 분야지만 돈도 안되는데다 교육여건이 안 돼 있다”고 한탄한다.

하지만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법의학의 명맥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죽음의 진정한 이유를 밝히는 데 대한 보람 때문이기도 하다.

국내 법의학의 선구자인 문국진 대한법의학회장은 “지난 60년 국과수에 있을 때 출장부검을 갔다가 죽은 사람의 아버지가 ‘자식을 두번 죽인다’며 부검에 반대하며 도끼를 휘둘러 법의학을 그만두려 했다. 그러나 얼마 뒤 국민들이 김주열군의 주검에 분노하며 4·19혁명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감동해 생각을 고쳐 먹었다”고 회고했다. 이때 문 회장은 국민의 사인을 정확히 밝히는 것이 민주사회에 얼마나 기본적이면서도 자랑스러운 일인지 절감했다고 한다.

법의학자들은 스스로를 ‘한 인간의 마지막 인권 수호자’라고 자부한다. 박종철씨의 시신 감정을 내린 황적준 교수처럼 정치·사회적으로 큰 사건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런 경우는 많다. 지난 94년 한 청년이 강간에 저항하는 여자를 죽인 뒤 마치 여자가 추락해 자살한 것처럼 위장한 사건이 있었다. 그 청년이 범인이라는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었다. 서울대 ㅇ교수는 직접 경찰서에서 청년을 만났다. 캐물어도 청년은 “죽인 적이 없다”며 우겼다. ㅇ교수는 담배 한개비를 청년에게 건넸다. 청년이 담배를 다 피우자 이 교수는 얼른 그 담배꽁초를 집어들며 “이것으로 네 유전자를 알 수 있다. 숨진 여자가 반항하면서 손톱 속에 남긴 네 피부조직과 비교하면 너는 유죄가 확정된다. 지금 자수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고 설득했다. 사실은 이미 여자의 손톱을 분석했지만 청년의 유전자는 검출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알 리 없는 청년은 순순히 자백해 버렸다. ㅇ교수는 “자칫 미궁에 빠질 사건을 기지로 풀어 구천에 떠도는 처녀귀신의 원혼을 달랬다”며 지금도 무용담 삼아 이야기한다.

법의학자들은 바로 이런 맛에 산다. 국과수의 최영식(41) 법의관은 “나의 법의학적 소견으로 사건이 해결될 때 밀려오는 뿌듯함이 없다면 진작 국과수를 떠났을 것”이라고 말한다. 문국진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검시에는 무한한 책임이 따른다. 그렇기에 무엇으로도 그 대가는 될 수 없다. 단지 보람을 느낄 때 그동안 쌓였던 고뇌는 사라지게 마련이다.”

송창석 기자
song@mail.hani.co.kr


처음 (home)  





한국의 법의학자도 현장에 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