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사건의 가장 중요한 증거자료는 모두 변사체에 모여있다.'는 수사 격언이 있다. 실제로 변사체 검시는 살인 등 강력 사건 수사의 출발점으로 가장 기초적인 절차이다. 그럼에도 최근 세인의 이목을 끈 몇 건의 살인사건에 있어서 철저하지 못한 검시로 인하여 엉뚱한 사람을 살인범으로 구속하거나 무죄선고를 받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일이 여러번 있었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 검시제도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미비점을 보완하여 내실화를 기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검시라 함은 변사자 또는 변사의 의심이 있는 시체에 대하여 범죄의 혐의 유무를 판단하기 위하여 시체 및 그 주변 환경을 종합적으로 조사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검시의 목적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하고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질병 등 자연적인 원인이 아닌 범죄 또는 사고에 의하여 잃었을 경우에 그 사인을 정확히 밝힘으로써 사망자 및 유가족 등 관련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그것이 범죄로 인하여 야기된 경우에 그에 대한 적절한 사법처리를 행하여 사회질서를 유지함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검사가 검시의 주체가 되고 모든 변사가 수사기관에 신고되어 검시가 행하여지며 범죄와 관련되거나 또는 그러한 가능성이 있는 경우 수사기관의 청구에 의하여 법원의 허가(영장)를 받아 부검을 시행하는 이른바 '사법검시위주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사법검시위주제도에 대하여 비전문가가 검시의 책임자이므로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고, 검시에 경찰관·의사·검사·판사 등이 직·간접으로 관여하여 책임이 분산되어 있으며, 검시의 정확성과 신속성이 저하되고, 수사 및 사법작용에 필요한 경우에만 부검이 실시되어 행정부검은 원시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보건의료 정책 수립에 지장을 주며 의학 발전 및 교육에 허점을 노출시킬 뿐만 아니라 주로 일반의사가 검안을 담당하여 우수한 전문가도 배출할 수 없어 악순환이 계속되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고 일부 법의학자들이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다.
검시제도의 개선에 관하여는 다른 분이 여러가지 좋은 방안을 제시하기로 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수사경험에 기초한 실제적인 문제점만을 몇가지 지적해 보기로 한다.
그러면 우선 통상 행하여지고 있는 검시절차를 보자.
1996. 7. 10. 08:00경 창녀 A가 발가벗겨진 채 스타킹으로 목졸려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최초 발견자인 업주가 그 신고를 하자 먼저 가까운 파출소 직원이 출동하여 그 현장을 일단 확인하고 본서에 보고를 하여 본서에 근무하는 형사가 경찰 공의를 대동하고 현장에 나가 시체를 살펴보고 현장상황 및 최초 발견자 등을 조사한다.
이때 공의는 A의 시체를 훑어보고 사인은 교사이며 3시간 내지 5시간 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견서를 제시하고 사체검안서는 바로 본서로 보내주겠다고 한다. 형사는 본서로 돌아와 변사사건 발생보고서를 작성하여 전송 또는 서면으로 상급청과 검찰청에 보낸다. 검사는 보고내용을 검토하여 직접검시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직접 현장에 나가 다시 나온 형사와 경찰 공의의 설명을 들으며 검시를 한다음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부검을 하도록 지시한다.
형사는 최초발견자 등 관계인의 진술조서, 급히 현상한 현장 사진, 경찰 공의의 사체검안서 등 자료를 갖춰 변사자 A의 시체에 대한 압수·수색·검증 영장 신청서를 검찰청에 송부하고, 검사는 검토 후 법원에 압수·수색·검증 영장을 청구, 이를 발부받아 경찰서에 내려 보낸다. 담당형사는 그 영장을 집행하여 부검의뢰서와 함께 A의 시체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운반하여 부검의로 하여금 부검토록 한다. 1주일 남짓 지나 국립수사연구소로부터 부검 감정서를 송부받아 A의 사인 등을 확정짓게 된다.
각 사건마다 구체적인 사정이 다르고 지역에 따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의뢰하지 않고 지역의사에게 바로 부검 의뢰하는 등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위와 같은 절차를 밟는다.
그런데 얼핏 보아도 그 절차가 매우 번잡하고 중첩되는 것도 있으며, 지·파출소 직원, 본서의 형사, 경찰공의, 검사, 판사, 부검의 등 관계자도 많아 누가 그 검시를 책임지는지도 불분명하다. 그리고 위와 같은 검시절차에서 지·파출소 직원의 현장 출동시부터 검사의 지휘까지는 여러 시간이 소요되기 마련이고 부검의 필요가 있어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시체를 국립과학연구소 등으로 옮겨 부검을 실시하게 되기까지는 하루 이상이 걸리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시체는 온전하게 보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그 절차를 좀더 집중적으로 단순화함으로써 책임관계를 분명히하고 검시의 신속성과 정확성을 확보할 필요성이 있다.
현행법상 검시의 궁극적인 책임자는 검사이다. 그러나 사건의 폭주로 인하여 다른 일반사건 처리만으로도 그 업무량이 과중하여 연간 약 35,733(1995년의 경우)건씩 발생하는 변사사건에 관하여 검사가 모두 직접 검시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하여 검사가 직접 검시하는 경우는 전체변사사건의 9.6% 정도(1995년의 경우)뿐인데 나머지는 검사의 명을 받아 사법경찰관이 검시를 대행하게 된다. 이와같이 검시의 주체가 대부분의 경우 직접 이를 시행하지 못하고 대행시킬 수 밖에 없다는 것부터가 우리나라 검시제도는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업무의 성격상 실제로 검시를 행하는 경찰관도 독자적으로는 이를 할 수 없고 의사에게 검안을 의뢰할 수 밖에 없다. 의학적 전문지식의 보충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검시보고에는 의사의 사망진단서 또는 사체검안서를 반드시 첨부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검시의 실무는 의사가 수행하고 있는 셈이라고까지 하는데 실제로 변사자의 사인과 사망시각에 관하여는 최초에 시체를 검안한 의사의 의견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것이 그 실상이다.
그러면 경찰공의 등 의사의 검안 소견은 믿을 만한 것인가.
불행하게도 그렇지 못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현행법상 의사·치과의사 또는 한의사는 별다른 제한 없이 누구라도 검안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나라의 의과대학 교육과정에서 검시 내지 법의학에 대한 교육이 전혀 실시되지 않았거나 지극히 형식적으로만 하여왔기 때문에 시체를 검안하는 의사도 그에 대한 지식이 아주 불충분한 상태에서 이를 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더구나 일부 지방에서는 경찰공의가 형식적으로는 지정되어 있으나 해부병리나 법의학 지식이 전무하다시피한 이른바 '동네의사'들이 경찰업무에 협조한다는 취지에서 순번제로 시체 검안을 해주기도 하는데 이들이 작성한 시체검안서를 보면 사망의 원인이 아니라 사람의 사망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상태인 '심폐정지' '호흡정지'를 사인으로 기재되어 있는 경우도 있을 정도이다. 그러니 이들에게 정확한 법의학 지식을 기초로한 사인 확정과 사망시각 추정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필자가 평검사 시절 실제로 경험한 사례를 두가지 들어 보겠다.
어느 날 당직을 하고 있는데 21:30경 변사사건발생보고가 전송으로 올라왔다. 30대 후반의 가정주부가 특별한 외상이 없이 사망하였는데 농약으로 보이는 약물을 마시고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니 시체를 유족에게 인도하겠다는 취지였다.
필자로서는 우선 그 변사자가 음용하였다는 약물의 용기가 현장에 없었고, 자살을 한 것이라고 단정할 만한 유서 등도 전혀 없었으며, 또한 변사장소가 변사자의 집이 아닌 점 등이 미심쩍어 직접 현장에 나가 검시를 하였다. 현장에 들어가려 하니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는데 시체가 막 부패하기 시작할 때 풍기는 그런 냄새였다. 그리고 그 시체를 자세히 살펴보니 목 양쪽에 아주 희미하게 액흔 같은 것이 보였다.
결론만 얘기하면, 카바레 종업원인 그 방 주인이 유부녀인 변사자를 그곳에 데리고 와 동침한 후 어떤 이유로 다투다가 이불을 뒤집어 씌우고 목을 눌러 죽인 것으로 파악되어 살인사건으로 수사토록 지시했는데 그 살인범은 2일 뒤 어느 온천의 여관에서 자신의 잘못을 비는 유서와 함께 줄넘기 줄로 목매달아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 사건에서 최초에 검안한 의사(경찰공의로 지정된 의사가 아니고 일반의사였음)는 변사자에게서 나는 역한 냄새를 농약 냄새로 보고 농약을 마시고 자살한 것으로 엉뚱하게 추정하고 경찰관도 그 의견에만 맹종함으로써 살인사건이 엉뚱하게 자살사건으로 묻혀버릴 뻔 했던 것이다.
또 한 가지 사례를 보자.
연말이 가까운 어느 날 경찰에서 올라온 변사사건발생보고에 의하면 부부가 함께 자다가 연탄가스 중독이 되어 대학병원으로 후송, 치료를 하였으나 남편은 깨어나고 부인은 사망하였으니 시체를 유족에게 인도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는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많았기 때문에 이 사건도 통상적인 일산화탄소중독 사건으로보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으나 통상 일산화탄소 중독에는 남자보다 지방층이 두꺼운 여자가 더 강하다고 들었는데 부인은 사망하고 남편은 병원에서도 별다른 처치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멀쩡하다는 것이 맘에 걸렸다.
그러나 그때 다른 사건 수사로 바빠 직접 검시를 나가지는 못하고 일단 변사자의 혈액을 채취하여 혈중 COHB 농도를측정해보라고 경찰에 지시했다. 그랬더니 경찰서 수사과장이 그 대학병원에는 COHB검사 장비가 없고 경찰공의의 검안대로 일산화탄소 중독이 틀림없으니 지휘내용을 바꿔줄 수 없냐고 다시 건의를 하고 검안을 했다는 경찰공의까지 전화를 걸어 변사자의 전신에 걸쳐 선홍색 시반이 퍼져있으니 일산화탄소중독이 틀림없다면서 시체를 바로 유족에게 인도하여 장례를 치르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보충의견'까지 내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필자는 고집을 피워 원래의 지시대로 혈중 COHB검사를 반드시 하라고 경찰에게 단호히 지시를 했고, 담당 경찰관은 결국 변사자의 혈액을 채취하여 그 장비를 갖춘 병원에서 검사를 하였는 바 혈중에 일산화탄소가 전혀 나타나지 않아 사인이 일산화탄소중독일 수 없음이 밝혀졌다.
필자는 다시 부검을 실시하라고 지시했는데 유족이라는 사람들이 10여명 검사실로 몰려와 왜 망인을 두번 죽이려 하느냐고 강력히 항의하며 소란을 피웠다. 필자는 '사망의 원인을 정확히 밝히는 것이 오히려 망인의 원을 풀어주는 것이 된다. 이것은 살인사건일 수도 있는데 자꾸만 부검을 반대하면 반대하는 사람부터 조사할 수 밖에 없다'고 다소 엄한 태도로 그들을 설득하여 돌려 보냈다.
부검 결과 사인은 외상성지주막하 출혈이었다. 신발공장에 다니는 부인(변사자)이 망년회를 하고 오는 것이라면서 술 냄새를 풍기며 밤늦게 들어오자 남편과 언쟁이 벌어져 다투다가 남편이 부인의 머리채를 잡고 장롱모서리에 짓이겨 사망케 한 것이었다. 그런데 경찰공의의 '선홍색 시반=일산화탄소중독'이라는 어설픈 법의학 지식 때문에 엉뚱하게 연탄가스 중독사가 될 뻔했던 것이다. 물론 그 남편은 상해치사죄로 바로 구속되었고 후에 유죄판결이 확정되었다.
위 두 가지 사례는 우연히 발견된 경우라고 하겠지만 어쩌면 그러한 사건들이 그냥 묻혀버리는 경우가 무수히 많을지도 모른다.
앞서 검시절차의 가상적인 예로 든 창녀 A의 죽음의 경우를 보자. 최초에 검안한 의사 B가 사망추정시각 을 3시간 내지 5시간 전이라고 의견을 제시하여 경찰은 사망시각의 상한을 1996.7.10. 03:00경으로 본다. 현장에 남아있는 모발·음모, 맥주병과 잔에 남아있는 지문, 동료 창녀의 진술 등을 토대로 A의 단골 손님 중의 하나인 용의자 C를 검거한다. C는 A와 2회 ㅁㅁ를 하고 나올려고 하니 A가 ㅁㅁ를 두번했으니 화대를 더 달라고 떼를 써 말다툼을 하다가 화가 나 스타킹으로 목을 졸랐다고 쉽게 자백을 한다.
다만 자신의 기억으로는 7.10. 01:00경 범행을 한 것 같다고 진술하였으나 담당형사는 그러면 의사의 사체검안서와 맞지 않고 당시 시계를 본 것도 아니고 흥분된 상태에서 시간을 잘못 알았을 지도 모르니 범행시각을 7.10. 03:00경으로 하자고 하여 C도 아니라고 고집할 입장이 아니어서 피의자 신문조서에 1996. 7.10. 03:00경 A의 목을 졸라 죽인 것으로 기재하는데 동의한다.
검찰에서도 그렇게 자백을 한다. 그러나 법정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유능한 변호사의 도움을 받은 C는 경찰에서는 하도 엄하게 추궁하여 고문당할 것이 겁이 나고 지문 등 증거가 다 있다고 몰아부쳐 할 수 없이 범행하였다고 그냥 거짓 자백을 했으나 사실은 그날 01:00쯤에 그곳을 떠나 친구 D의 집으로 가 포커를 했가고 알리바이를 주장한다. 물론 D 등이 법정에 나와 C의 알리바이를 입증해주고 그날 01:00경 C를 친구 D의 집 앞까지 태워다 준 자가용 영업을 하는 기사도 나타난다. 범행시각으로 되어있는 1996. 7.10. 03:00경에 C가 현장에 없었음이 입증된 이상 범행현장에 남아있던 C의 음모·지문 등도 C가 그곳에 갔었다는 자료는 될지언정 C가 살인을 했다는 증거로 삼을 수는 없다. 그때 가서 범행시각이 1996. 7.10. 01:00경이라고 공소장을 변경할 수도 없고 결국 C에 대하여 증거부족으로 무죄가 선고된다.
이것은 순전히 가상적인 예이지만 최초 검안의사의 잘못된 사망시각 추정과 경찰이 이를 맹종함으로써 살인사건이 무죄선고로 끝나는 예가 제법 여러건 있다. 위의 예와는 달리 피의자가 자백하는 시각을 범행시각으로 하여 기소를 하였는데 사체를 검안한 의사의 사망추정시각과 시차가 상당히 나므로 피고인의 수사기관에서의 자백은 믿을 수 없다고 무죄가 선고된 예도 몇 건 있다. 또 '김기웅 순경 사건'에서처럼 의사의 잘못된 사망시각 추정에 맞춰 수사를 하여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기도 한다.
사체가 부패되기 시작한 때 풍기는 냄새를 농약냄새로 아는 의사, 외상성 지주막하출혈로 사망한 시체에 대하여 두피검사도 안하고 일산화탄소중독으로 단정해 버리는 의사, 직장체온측정으로 사망시각을 추정하는 방법도 모르는 그런 의사의 검안의견을 기초로해서 강력사건 수사가 시작된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사망추정시각은 부검을 해 보면 정확히 알 수 있지 않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에도 허점이 있다.
서울의 경우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의뢰를 하기 때문에 법의학 전문가이고 시체해부를 전업으로 하는 그 곳 부검의의 감정의견에는 신빙성을 둘 수 있지만 지방 중소도시나 군단위에서는 '시체해부에 관하여 상당한 지식과 경험이 있는 의사 또는 치과의사로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허가한'(시체해부보존법 제2조 제1항) 일반의사가 부검을 하기도 하기 때문에 그 감정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검안의 경우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또 서울지역의 경우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의들이 처음부터 변사체가 현존하는 곳으로 가서 검안을 하는 것이 아니고 일단 경찰공의 등이 검안을 하고 부검의 필요성이 있을 때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시체를 옮기게 되는데 시체를 옮기면 일단 사망당시와 기온·습도 등 환경이 달라지므로 시강이나 시반등에 의한 정확한 사망시각 추정이 어렵고 또 시체의 부패방지를 위하여 냉동되는 경우도 많아 직장체온 측정에 의한 사망시각추정 같은 것은 아예 불가능하게 된다.
물론 위내용물의 소화 정도 등으로도 사망시각을 추정할 수도 있으나 그 정확도가 떨어지고 또 최근의 '치과의사 모녀 살해 사건'에서처럼 피해자가 식사를 언제 했느냐 하는 것 자체가 확정되지 않을 때에는 위 내용물에 의한 사망시각 추정은 무의미한 것이 된다. 그리하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감정서 양식에는 아예 '사망추정시각'을 기재하는 난이 없다. 그러니 법의학 전문가가 아닌 일반의사가 작성한 사체검안서에 기재된 '사망추정시각'은 절대적인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지금까지 검시에 임하는 의사의 법의학 지식부족을 탓하는 것 일변도식으로 기술한 것 같은데 사실은 그것은 의사들의 잘못은 아니다.
먼저 그들이 법의학 지식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것은 앞서 언급한 대로 우리나라 의과대학에서의 법의학교육의 부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의과대학 교육과정을 개편하면서 법의전문의(Medical Examiner)제도가 별도로 있어 일반의사는 검시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일반 의과대학에서는 법의학 내지 검시에 관한 교육을 거의 하지 아니하는 미국의 커리큘럼을 그대로 모방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일단 의사가 되면 실질적으로 모두 검시관 노릇을 하여야 함에도 검시 내지 법의학에 대한 지식을 거의 갖추지 못한 채 그대로 의사로 배출되는데 의과대학에서의 법의학 교육을 대폭 강화하지 아니하고는 근본적으로 문제해결이 안될 것이다.
또한 의사는 검시의 책임자는 아니다. 다만 검사나 경찰관의 검시를 도와주는 것일 뿐이다. 미국의 검시관제도처럼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의사에게 검시를 전담시켜 책임과 함께 그에 상응하는 보수 및 사회적 대우를 해 준다면 해당의사의 법의학 지식은 자연히 충실해 질 것이다. 사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변사체를 검시하는 의사들은 그것을 자신의 고유의 업무로서 직업적 자부심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고 덤으로 하는 것일 뿐 아니라 그것도 검찰이나 경찰에 밉보이지 않기 위하여 마지 못해 하는 것이 솔직한 실정이다.
실제로 변사체를 검안하는 의사는 그로 인하여 많은 시간을 빼앗기면서도 전혀 보수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장에 미국의 법의관이나 영국 등의 검시관과 같은 제도를 그대로 도입할 수는 없지만 일정한 과정을 거친 의사에게만 변사체를 검안할 자격을 주고 검안의사에게 적절한 보수 지급과 직업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불어 넣어주지 아니하고는 충실한 검시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이제 검시의 주체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검시에 관한 모든 문제에 관하여는 검시의 주체인 검사가 전부 책임져야한다. 또한 실제로 대부분의 검시를 대행하는 경찰관이 그 일부를 분담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앞서 언급한 검시제도의 여러 문제점도 결국 검사나 경찰관이 검시의 책임자로서 이를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본다.
법의학의 전문지식 문제만 보더라도 의사 쪽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검사나 경찰관이 검시의 주체답게 전문가로서의 지식과 경험을 갖춘다면 그 상당부분이 저절로 해결되리라고 본다. 그러나 검사들은 과중한 업무량, 잦은 인사이동과 전담업무의 변동 등으로 변사체 검시에 관하여 깊이 있는 연구를 못하고 있는 형편이고, 경찰관들도 검시에 대하여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구전으로 내려오는 관행에 따라 검시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의사들보다도 경찰관에 대한 검시 및 법의학 교육 소흘이 더 문제일지 모른다. 최근에는 강력전문검사교육이나 경찰수사간부연수과정 등에서 이에 대한 교육을 상당 수준으로 하고 있는데 매우 반가운 일이다.
또한 절차의 번잡으로 검시의 신속성과 정확성이 저해되고 있는 점에 대하여도 물론 제도 자체에도 문제가 있지만 그동안 검찰과 경찰이 너무 타성적으로 변사사건 처리를 해온 탓도 있다고 생각된다. 종래의 틀을 과감히 벗어나 강력 검사를 주축으로 하고 각 경찰서의 형사과장 (형사과가 없는 경찰서는 수사과장)을 실무 책임자로 하는 '팀웍 수사체계'를 갖추어 살인 등 강력 범죄로 인한 변사체와 타살의 의심이 있는 변사체가 발견된 때에는 즉각 보고가 되어 검사가 바로 검안의를 대동하고 현장에 출동하여 변사체 검시와 현장 수사지휘를 한다면 좀더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변사체 검시 업무가 수행되리라고 본다.
끝으로 수사 장비와 예산의 부족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일선 경찰서의 실상을 보면 변사체에 나타난 치흔이나 손톱자국 등 정교한 부분을 사진촬영한 접사렌즈가 없고 비디오 찰영할 기기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부검의사에 지급할 부검비에 대한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여 검안의사에게 검안비를 지급하는 것은 거의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변사체 검시라는 중요하고 어려운 업무에 종사하는 경찰관에 대한 인사상의 우대 등 사기 진작책과 충분한 수사비의 지급, 과학수사장비의 구비 등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변사체 검시 및 강력사건 현장 수사·감식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검시제도의 실상과 문제점을 경험적인 시각에서 나열해 보았는데 제도 자체의 문제점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책임지고 집행하는 검사와 경찰관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제도 본래의 취지를 살리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정진한다면 그러한 문제점은 강력사건 등에서의 실체적 진실 발견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으리라고 믿으며 이 글을 맺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