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만남

인천교구 서곶 협의회

찬미 예수님 !

주님 보잘 것 없는 저희를 하느님 곁으로 더 다가설 수 있는 빈첸시오회에 보내 주신 은총을 감사드립니다. 이 체험을 통해 가슴깊이 활동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심에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저희 서곶 빈첸시오회는 96년 9월에 창단 되어 그해 12월 경서동 단칸방에서 외롭게 살아가시는 조창근 할아버지를 첫 대상자로 하여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할아버지는 사망신고가 되어있어 주민등록이 없는 상태로 살고 계셨습니다. 거동에 별 이상이 없으신 할아버지는 고물을 수집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셨고, 이웃과는 그다지 가깝게 지내지 않으시고 말씀도 적으신 데다가 사람을 그리 반겨주시지도 않았고 베풀지도 못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생활비 보조를 받아야 할만큼 절실하지는 않았으나 몇 년간 반찬과 김장, 집안의 전기보수, 설빔 음식 등 가끔은 술도 사다드리며 회원들과의 계속된 만남으로 정이 깊어졌습니다. 할아버지는 가지고 계시던 현금50만원을 도둑맞으면서 회원이름으로 통장개설을 원하셨고 회원들은 흔쾌히 통장을 만들어 드렸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마음을 열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할아버지 댁의 대대적인 보일러 공사를 하면서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셨지만 무반응인 할아버지에게 다가가려는 우리의 노력은 지치고 힘들기도 했습니다. 평생을 외롭게 사신 할아버지가 세례를 받으면서 베드로로 새로 태어나셨습니다. 세례 받은 축복의 선물처럼 그 어렵기만 하던 호적 갱신이 이루어져 주민등록등본도 만들어 드렸습니다.

주민등록이 만들어지면서 할아버지는 생활보호대상자로 등록 할 수 있었고, 매월 17만원씩 생활 보조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허리를 다치는 일이 생겨 고물 수집하기 힘들게 되었고, 허리의 통증은 점점 더 악화되어 할아버지를 더욱 더 외롭고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형제님들이 방문하여 묵주기도를 가르쳐드리던 어느 날 갑자기 할아버지는 뇌출혈로 쓰러져서 인천 의료원 중환자실로 입원하시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 몸에서는 심한 욕창 때문에 악취가 지독히 났고, 몸을 비스듬히 누이고 힘없이 동공만 굴리고 있었습니다. 그 큰 눈은 미움과 원망과 고통의 한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나올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의 굳게 다문 입술은 끝내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할아버지가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 회원들의 아프고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은 위로해 주었습니다. 두 달 동안 자원봉사자의 간호로 병원생활을 하시다가 병원 측의 반강제로 9월19일에 퇴원해야만 했습니다.

다행이 연락이 된 조카며느리와 형수가 할아버지를 수발 할 것이라 하기에 회원들은 걱정스럽게 경서동 기거하던 곳으로 옮겼습니다. 하루하루가 지나가면서 할아버지의 병세는 악화되었고 물 한 모금조차 넘기기 어려운 상태지만 힘없이 늘어진 손에 묵주를 꼭 잡은 채 놓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목구멍으로 혀가 말려 들어가 입을 항상 벌린 상태로 계셨습니다.

형수와 조카며느리의 병간호 덕분에 그런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할아버지의 모습은 편안해 보였습니다. 하느님께서 평생을 외롭게 살아오신 할아버지에게 주시는 마지막 선물인 듯 그분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게다가 몇 십 년만에 형님도 만나고 간호도 받으며 얼굴도 보지 못한 조카들도 찾아 왔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도 마다 않고 할아버지께 듬뿍 사랑을 쏟아준 조카며느리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되어 회원들은 할아버지와 마지막 추석을 준비하기 위해 자주 방문하여 기도 드렸습니다.

추석을 하루 앞두고 할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어 회원들은 시간봉사를 할 수 없었기에 마음에 갈등이 심했습니다. 저도 여자이지만 며느리 입장으로서 내 가족을 포기하고 봉사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저희가 우리 가족의 소중함만 생각했다면 이렇게 잘 해결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10월 3일 회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할아버지의 숨소리가 거칠어 지기시작 하더니 회원들의 임종 전 기도소리를 들으며 평온하게 숨을 거두셨습니다. 서곶 본당 빈첸시오회원들이 처음 치른 초상이었지만 많은 교우들의 방문으로 할아버지의 연도는 끝이 없었습니다. 눈물이 아닌 사랑으로 슬픔이 아닌 기쁨으로 치른 잔치였습니다. 많은 음식은 없지만 따뜻한 즉석부침은 모든 분들의 마음을 데우는데 충분했습니다.

할아버지의 남은 돈은 친척들의 동의로 성전 건축기금으로 모두 봉헌되었습니다. 가정의 소중함과 가족의 귀중함을 일깨워 주시고, 회원 전체를 하나로 뭉치게 해 주신 베드로 할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외로운 골방에서 벗어나 이제는 기쁨의 집으로 가셔서 영원히 사십시오. 이 모든 영광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바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