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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살인혐의 무죄판결 받은 이도행씨



“사람들이 자꾸 무죄판결 받은 것을 축하한다는데 뭐가 축하할 일인지 모르겠어요. 나는 원래 범인이 아니고,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어야 했는데 ….” 17일 서울고법의 무죄판결로 또다시 `엇갈리는 운명'의 주인공이 된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의 이도행(39·외과 의사)씨는 그동안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날 오후 자신의 무죄 운동을 벌이던 `이도행을 생각하는 모임' 관계자들, 김형태 변호사와 함께 서울 강남역 부근 카페에 앉은 이씨는 시종 밝은 얼굴이었다. 법정에서 선고를 앞두고는 미동도 없이 기도를 올리던 그였다.

1995년 9월 사건발생 3개월이 되도록 이씨 부인(당시 31살)과 딸(1)의 살해범을 찾지 못하던 경찰과 검찰은 이씨를 의심한 처가쪽 진술에 무게를 두고 그를 전격 체포했다.

수사관들한테서 위로를 받는 처지이던 이씨는 하루아침에 부인과 어린 딸을 목졸라 살해하고 주검을 욕조에 담그는가 하면, `지연화재'로 알리바이(현장부재증명)를 조작하려 한 흉악범으로 몰렸다.

1998년 11월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뒤 다시 2년3개월여의 긴 재판이 시작됐다. 항소심 무죄 판결로 석방된 뒤 병원에 취직해 일하면서 외국인노동자 진료소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이씨는 일을 모두 그만뒀다.

“사람들이 내 얼굴을 알아 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가족들한테도 미안해 친가인 전주와 서울 누나집을 오가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10개월여의 옥살이에 대해 이씨는 “억울함에 앞서 죽은 아내와 딸에 대한 생각으로 제정신이 아니던 때”라고 기억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안정을 되찾았다고도 했다.

이씨는 언론에 대해 “좀더 신중하게 접근했더라면 그렇게까지 선정적으로 나를 범인으로 몰아가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본영 기자ebon@hani.co.kr

이도행씨 무죄선고 이종찬 부장판사

이도행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이종찬(53)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법정에서 “진실은 거짓과 위선, 고통과 어두운 장막을 거둬주는 고귀한 빛이며, 재판부는 이 빛을 찾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고 밝혀, 2년3개월을 끈 파기환송심 공판의 어려움을 이례적으로 토로했다.

―대법원은 `부분적으로는 유죄입증에 문제가 있는 증거들이라도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유죄판단의 근거가 된다'는 이유로 고법의 무죄판결을 유죄취지로 깼었는데? =대법원이 반드시 유죄심증을 갖고 판단했다고 보지 않는다. 더 확실하게 심리를 해서 판단하라는 뜻으로 받아 들였다.

―재판부 안에서 이견은 없었나? =합의부 판사 세명 모두 기록을 보면서 절차탁마하는 자세로 결론을 이끌어 냈다. 법원 안에서도 이러저러한 의견이 있었다.

―간접증거로만 심리를 진행하면서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사물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통상적, 상식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려고 애썼다. 형사재판에서는 점점 더 엄격한 증거를 요구하는 추세다.

―강력사건 과학수사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중죄에 해당하는 범죄일수록 직접증거가 없다. 우리는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중형을 선고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한다. 살인사건 같은 경우 법의학자들이 경찰 등이 낸 서류로 감정을 하는 게 아니라 사건현장에 일찍 출동해 감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본영 기자ebon@hani.co.kr

이도행씨 '무죄' 의미

`한국판 OJ 심슨 사건'으로 불리는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에서 서울고법이 두 번째로 무죄를 선고한 것은, 대법원이 “개별적 증거들의 종합적 증명력”을 이유로 1996년의 항소심 무죄 판결을 깬 것을 또다시 뒤집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7일 선고를 앞두고 판사들 사이에서도 “무죄판결이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하급심이 대법원 판결취지를 거스른 전례는 흔치 않다. 이번 판결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정도의 증명이 있어야 유죄판결이 가능하다는 대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이번 판결은 또 국내 법의학 수준의 후진성을 들춰냈다. 직접증거·목격자·자백이 없어, 이씨 출근시각인 오전 7시 이전 또는 이후에 사건이 일어났느냐를 다툰 이 사건에서 검찰은 시강(주검의 굳기)과 시반(주검에 나타난 반점)에 대한 국내 법의학자들의 소견을 들어 이씨 출근시각 전에 사건이 일어났다고 단정했다.

그러나 이씨의 변호인인 김형태 변호사는 파기환송심에서 스위스 법의학자 크롬페셔 교수를 증인으로 채택해 “이씨 출근 이후 사건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증언을 이끌어냈으며, 이는 최신이론으로도 뒷받침됐다.

검찰은 또 이씨 출근 뒤 일러야 1시간40분 뒤에 발견된 아파트 화재에 대해 `지연화재'라고 주장했다. 보험회사의 컴퓨터시뮬레이션을 적용한 결과, 불은 아침 6시40분~7시10분 사이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므로 이씨가 범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이에 아파트 내부를 재현한 모의화재실험을 벌이며 반박했다. 재판부도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투입한 수치는 객관성이 없고, 출근시간대에 2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불이 발견됐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이씨 부인의 불륜을 범행동기로 든 검찰 주장도 “2년여 전의 일이 새삼 문제됐을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탄핵되는 등, 검찰이 제시한 10여가지의 정황증거는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 변호사는 “국내 강력사건 수사와 법의학의 문제점은 수십년 전의 책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고, 갖고 있는 이론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재상고하겠다고 밝혔지만, 파기환송심에서 피고인쪽이 무죄입증에 주력했다는 점에서 무죄 확정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1996년 `듀스'의 김성재씨 살해사건 무죄 선고, `신림동 여관 살인사건'과 함께 과학적·합리적 수사관행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사례로 남을 전망이다. 이본영 기자

치과의사 모녀살해혐의 '무죄'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의 진범으로 몰려 기소된 이도행(39·외과의사)씨에게 파기환송심에서 또다시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이종찬 부장판사)는 17일 지난 1995년 서울 은평구 불광동 자신의 아파트에서 부인(당시 31살)와 딸(1)을 목졸라 숨지게 하고 불을 지른 혐의(살인 및 현주건조물 방화)로 기소된 이씨에게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1심 사형선고를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씨는 95년 6월 부인과 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1심 사형, 항소심 무죄, 대법원 유죄취지 파기환송 등의 엇갈리는 판결을 받아 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검찰은 주검의 강직(시강)과 반점(시반)에 대한 국내 법의학자들의 소견을 근거로 사망 추정시간이 이씨 출근 전인 7시 이전이라고 주장하나, 법의학자들 사이에서도 시강 등을 기초로 한 사망시각 추정에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다”며 “주위환경과 사람에 따라 시강과 시반이 다를 수도 있으므로 사건 발생이 7시 이전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아파트 방화시간을 두고서도 “검찰은 일러도 아침 8시40분에 아파트 경비원에 의해 발견된 아파트 안방 화재가 범인의 지능적인 지연방화에 따라 늦게 발견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화재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더라도 범행 예상시각인 7시 이전에 발생한 화재가 그처럼 늦게 발견된 것을 수긍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무죄판결에 대해 재상고할 방침이어서, 대법원의 두번째 판단이 주목된다.

이본영 기자e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