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시에 대한 책임의 분산
우리나라의 경우 검시의 책임자는 형사소송법(제222조)의 규정에 의하여 검사이다. 그러나 검사의 수에 비하여 발생되는 변사의 수가 많아 검시의 집행을 사법경찰관에게 위임하기 때문에 검시를 실제 집행하는 것은 경찰관이다. 즉 집행책임자는 경찰관인 셈이다.
검시의 업무 성격상 의사의 검안은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비록 집행책임을 지고 있는 경찰관이지만 의사에게 검안을 의뢰하지 않을 수 없고 검시보고에는 의사의 사망진단서 또는 사체검안서를 반드시 첨부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검시의 실무는 의사가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또 변사체의 부검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검사나 경찰관이나 의사의 마음대로 이를 수행할 수 없고 반드시 법원의 영장, 즉 허락을 받아서 실시하여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검의 가부를 결정하는 책임자는 판사이다.
즉 검시가 지휘, 집행, 실무 및 부검 여부 결정 등의 책임으로 분산되다보니 모두가 분산된 책임에만 충실하려 하지 검시 원래의 목적 수행은 망각된 상태에서 자기의 책임완수 또는 모면하기 위한 노력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보인다.
아무리 숙달된 의사라 할지라도 시체의 외표만을 보고 사인을 결정한다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하물며 의사의 진료 사실이 없는 죽음에 대하여 범죄의 우려만 없으면 사인이나 사망의 종류를 잘 알 수 없는 상태라 할 지라도 그대로 처리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검시의 후진성을 탈피하지 못한 탓이며 이것은 검시의 책임이 분사되어 있기 때문에 오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큰 문제점이라 생각된다.
우리와 같은 문제점을 갖고 있는 일본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변사체의 검시를 우선 감찰의의 검안을 통해 사법 해부, 행정 해부의 구별 및 그대로 매장 또는 화장 등의 시체 처리를 하는 소위 행정 검시 우선제도로 전환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검의사의 자질문제
영미법계의 국가에서는 부검을 대학의 교수급 또는 훈련된 전문의에게 의뢰하고 있는데 비해 대륙법계의 국가에서는 일반의사 누구에게나 부검을 의뢰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몇 개 국가에서는 범죄와 관련된 시체는 반드시 대학의 법의학 교수에게 의뢰하도록 하고 있다.
감찰의를 갖고 있는 일본의 경우도 범죄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법해부는 검찰을 통하여 대학에 보내고 있으며 행정해부는 감찰의가 맡고 있다.
감찰의의 자격을 위한 특별한 시험이 있는 것은 아니나 대학의 법의학 교실에서 2년 이상 수련받은 경력을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시체해부보존법(제2조 제1항)으로 시체해부에 관하여 상당한 지식과 경험이 있는 의사 또는 치과의사로서 보사부장관이 적당하다고 허가한 자로 규정하고 있을 뿐 상당한 지식과 경험에 대한 확실한 기준이 없다.
또 시체해부보존법 제6조에 의한 행정해부 및 동법 제7조에 의한 사법해부 때는 해부를 의뢰하거나 명령하는 행정당국, 검찰 또는 법원이 직접 의뢰하게 되어 있으며 의뢰받는 의사의 자질에 대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의사라면 누구에게나 의뢰할 수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부검을 의뢰하거나 명령하는 행정당국, 검찰 및 법관 나름대로 이에 대한 자각과 재고가 없는 한 우리나라 검시 특히 부검에 있어서 의사의 자질 문제는 개선될 수 없는 것이다.
검시 목적의 편향적 인식
변사체에 대한 검시는 국민의 죽음에 대한 국가적인 감시이며 억울한 죽음을 없게 한다는 국가적인 노력이다.
따라서 정확하고 공정한 사인 규명으로 인권의 옹호, 사회 질서의 유지와 사법 작용의 정확성 등과 더불어 국민보건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기초 자료로서의 사인 통계, 전염병 예방 대책 및 식품위생 대책 수립에 대하여 의학교육에의 공헌 그리고 각종 사고사의 책임의 공평한 분배 등을 그 목적으로 둘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같이 검시의 책임을 검찰이 지고 있는 나라에서는 검시의 목적이 사회질서유지 및 사법작용의 정확화에만 편중되고 국민의 보건정책, 의학교육 및 민사적 책임분배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한 목적은 거의 무시된 상태에서 시행되고 있다. 즉 사법검시만 실시되고 있으며 행정검시는 거의 시행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사체 중에서 범죄와 관계된 것이 확실하거나 그러할 우려가 있는 시체만 법원에 부검을 요청하고 또 그러한 목적의 부검만을 법원에서도 허락하는, 즉 거의 전적으로 사법 검시만을 골라 시행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국민의 보건정책수립과 의학교육에 있어서 기초자료가 없기 때문에 다른 나라 것을 이용하는 도리 밖에 없으며 각종 사고사의 민사적 책임분배에 있어서도 정확한 사인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처리되기 때문에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다. 또 유효한 검시를 하기 위한 의사의 양성을 위한 목적은 거의 고려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유능한 검시 의사를 배출할 수 없어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비록 대륙법계의 나라이지만 이웃나라인 일본에서는 감찰의 제도를 실시하여 사법검시 위주에서 행정검시 우선으로 전환하였다. 즉 변사자의 검시를 우선 법의학의 지식을 지닌 감찰의로 하여금 검안케 하여 사법해부에 해당되는 것을 검찰로 넘기고 행정해부에 해당되는 것은 자신이 부검을 할 수 있는 재량을 주어 보건 정책, 민사적 책임분배, 의학발전 및 후진 양성을 위한 교육 등의 목적으로 충실히 실현시키고 있다.

검시교육의 소흘
검시의 법률상 책임자인 검사가 되기까지 또 부검의 시행 여부를 판단하는 판사가 되기까지의 기간에 있어서 검시에 대한 특별한 교육은 실시되지 않고 있으며 또 사법시험에 있어서도 검시지식에 대한 검토와 평가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또 검시를 집행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경찰관들에 있어서도 검시에 대한 교육이 실시되고 있지 않아 구전으로 내려오거나 또는 어깨너머로 배운 지식으로 검시를 수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검시의 실무자인 의사에 있어서도 대학교육의 과정에서 검시에 대한 교육이 전혀 실시되지 않고 있거나 소흘히 시행되고 있는 실정인데 여기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가 해방전까지는 몇개 의과대학에 법의학교실이 있었고 검시에 대한 강의도 충실히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미국식 의학교육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법의학교실은 유명무실하게 되어 없어졌다. 그 이유는 미국에서는 M.E.(법의관) 또는 검시관제도의 검시가 실시되기 때문에 일반의사는 자기가 취급하던 환자가 사망했을 때에 한해서 검시를 하며 다른 죽음에 대해서는 손을 대지 않고 법의관에게 넘기게 된다. 따라서 대학 의학교육 과정에서 검시 교육의 필요가 없어 미국 전체 의과 대학 중에 법의학 교실을 갖고 있는 대학은 불과 5개 대학에 지나지 않는 실정이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의학 교육 시찰단이 대거 미국으로 가서 의학 교육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이분들의 생각으로는 미국의 의과대학에 없는 것을 우리나라 대학에서만 그리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착각하여, 즉 사회제도와 교육과정에 대한 고려 및 비판없이 무조건 모방 도입의 결과로 있던 법의학교실도 없어지게 되었고 또 사회에서도 법의관 제도가 없는 가운데 5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게 되었다.
그 결과 검시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거나 불충분한 의사가 배출되었다. 졸업 후 사회에 나와 의료 업무만이 아니라 검시 업무도 맡게 되는데 검시업무에는 자신이 없기 때문에 어떤 의사는 이를 피하게 된다.
따라서 어떤 대학은 동창회를 통하여 대학당국에 교육과정에 검시교육을 충분히 해줄 것을 요구하고 또 법의학교실도 만들 것을 건의하나 대학은 검시와 같은 의사의 사회적 실무와는 거리가 먼 무풍지대라 이의 필요성을 실감나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듯 우리나라에서는 검시에 대한 인식부족과 교육의 소흘로 법률상의 책임자인 검사, 판사, 집행책임자인 경찰관, 실무책임자인 의사 등 모두가 정확한 검시지식이 결여된 상태에서 국민의 검시가 실시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법의학 박사, 문국진,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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