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도행씨를 만난 것은 1996 년 전주 중앙성당 예비자 교리실에서였다. 매우 모범적이고 성실했던 그가 이토록 아픈 사연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안 것은 예비자 공식면담을 통해서였다. 그때 그가 한 몇 마디 말은 두고 두고 마음을 아프게 했다

"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제가 완전 무죄 석방이 된다고 해도 평생 진범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제 삶을 지배할 것 같습니다

제 부모님조차도 자식이니 믿으시는 것 뿐, 그 사건의 현장을 목격한 분은 아니지 않습니까?
죽은 처와딸 그리고 범인 외에는 누구도 확신을 갖고 저를 믿어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면 정말 견디기 어렵습니다."

" 범인이 나타나 사실을 밝혀만 준다면 그를 용서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오랜 세월 동안 수행한 구도자의 모습처럼 초연해 보였다.

자신을 증명해 보일 수 없는 답답함과 막연함이란 참으로 안타깝고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러한 그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는 말은 영세 면담 때처럼 "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주님이 함께 하신다."이다.

 - 맹 마리아 수녀 -

시편 23편



이 세상에 정의는 살아있고 그 사도는 분명 어디엔가 있으실텐데...

사랑하는 아내와 오직 하나 밖에 없는 혈육마저 그 누군가 검은 손에 잔인하게 빼앗겨버리고 그 슬픔을 주체할 사이도 없이 그들을 죽인 범인으로 몰리어 정처없이 쫓기는 몸이 되어버린 그의 찢겨진 영혼의 깊은 상처는 그 무엇으로 보상하고 치유해야 하나요?

마음 잡을 곳 없어 어디엔가 있다가 그래도 누나라고 제게 찾아와 잠시 어린 조카들과 이야기 나누고 하루밤 묵지도 않고 떠나는 그 뒷모습은 얼마나 안스러운지...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죄, 다시 파기...

지긋 지긋한 몇 년의 세월입니까?

그는 지금 속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아니 세상이 죽이고 있습니다.

아니 법이라는 이름으로 앞뒤 맞지 않는 모순 투성이의 과학수사 소견이라는 것들 때문에 그는 극악무도한 인간이 되어버렸습니다.

모순 투성이의 수사도 억울하기 그지 없는데 최고의 양심과 지성의 표상이라는 대법관께서 뚜렷한 증거 하나없이 2심 무죄판결의 이유는 음미하지 않은 채 파기시켜버린 이 법의 현실 앞에서 이 가엾고 억울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만일 그가 범인이라면 그는 응당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가족은 그가 진정 그 살인범이라면 그의 손을 끌어 심판대에 올려 놓아야하며 눈물을 삼켜서라도 응분의 대가를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가 범인이 아니라면 진정 그 살인범이 아니라면 최고의 법원이 어떤 판결을 하였더라도 정정되어야 하며 그의 억울함과 인권은 반드시 보호되고 그의 명예 또한 반드시 회복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이라는 이름 하에 과학수사(?) 정황증거라는 미명하에 아내와 딸을 잃어 버리고 그 인생 청춘마저 앗겨버린 그가 그의 아내와 딸의 영전 앞에서 당당히 슬픔의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는 지금 도망자입니까? 범인입니까? 그는 지금 무엇입니까?

저는 그의 어디에서도 검은 모습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는 지금 그림자처럼 지냅니다.

그의 엷은 미소의 얼굴에서 돌아가는 초라한 그의 뒷모습에서 저는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하느님은 계시고 정의는 살아 있으며 그 사도는 우리를 위해 싸워 주시리라

믿습니다.

1999. 8.

- 이도행의 누나 이혜숙 -



1970년초 국민학교에서 동창생으로 만난 도행은 1970년 후반에 고등학교 교정에서 평범하게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 대학교에서 연극활동중에 보게 되니 이도행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으며 연극활동 중 일어나는 갈등이 도행의 중재와 희생으로 무난히 무대에 올라가게 되어 항시 그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담담한 사람 속에서 자꾸 눈에 들어오는 친구가 있어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생명의 귀중함을 대하는 직업으로서 의사를 선택한 우리는 책을 읽으며, 야외 모임에서 처음 생각을 간직하기 위해 날을 새며 토론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고와 행동이 평범하나 실행하는 모습은 모두의 귀감이 되었으며 자기 아닌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사랑을 실천한 도행은 대학시절부터 줄곧 나의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의예과 2년 때 어려웠던 연극의 주인공으로서 모습, 힘든 시험 기간동안 그가 보여준 애타 정신은 우리 모두가 배워야 했던 상징이었습니다.

선하신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형제와 친우들에게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고, 굳은 일을 도맡아하는 모범을 보였습니다.

의과대학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현악부활동과 연극을 통해 삶의 폭을 넓혀 사람사랑의 지혜를 저에게 먼저 알려주었고 항시 매사에 감사하는 신앙인의 진지한 모습이 흠뻑 몸에 배여 있었고 자신의 말과 행동을 지키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학교 생활 내내 도행은 조용한 예술인의 모습을 연상케했고 그가 우리와 같이 살고 있는 것은 미래에 대한 지표이기도 했습니다.

어려움에 직면한 도행을 위해 기도하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 친구로 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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