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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치과의 모녀살해’ 판결 파장



간접 증거를 근거로 유죄판결을 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법리 대립으로 ‘사형’과 ‘무죄’라는 극단적인 판결이 번복되고 있는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은 최종 확정판결과는 별도로 형사재판에 ‘증거주의’라는 원칙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법 형사합의5부(이종찬 부장판사)는 지난 17일 부인인 치과의사 최모(사망당시 30세)씨와 한살짜리 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사형을, 항소심에서 무죄를 각각 선고받은 뒤 다시 대법원에서 유죄취지의 파기환송을 선고받은 이도행(39·외과의사) 피고인에 대한 4번째 재판에서 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제시된 유죄증거들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정황증거의 증거력을 배척하고 “범죄에 대한 증명이 없는 경우의 유죄선고는 있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그러나 앞서 대법원은 98년11월 “범죄사실의 증명은 반드시 직접증거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논리와 경험칙에 합치되는 한 간접증거만으로도 할 수 있다”며 2심판결을 뒤집어 유죄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었다.

결국 1심과 대법원은 간접 증거의 증거력을 인정했고 항소심(2심)과 파기환송심을 담당한 서울고법은 간접 증거의 증거력을 배척해 극단적으로 대립했다.

1심과 대법원 상고심은 이른바 심증주의의 한국적 변형인 ‘국민 법감정’에 충실한 것으로 간접 증거주의의 경향을 띤 판결이며 항소심과 파기환송심은 수사기관의 발표에 따른 여론의 영향에서 벗어나 “증거가 없으면 유죄 선고도 없다”는 직접 증거주의에 충실한 판결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법원내 이같은 두 기류의 충돌은 5년여에 걸친 판결 번복이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에 대한 불신을 부추길 수도 있다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특히 검찰의 재상고로 이뤄질 5번째 재판에서도 대법원이 확정 판결을 내리지 않고 다시 파기환송을 결정해 대법원과 서울고법의 ‘핑퐁 게임’식 대립이 계속될 경우 총체적인 사법 불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또 이번 판결은 사건 현장에 접근하지 못하는 법의학자와 간접증거인 법의학 감정결과에 매달리는 수사기관에 대한 문제점과 개선점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이번 사건은 대법원이 횟수에 상관없이 파기환송을 계속할 수 있어 이론적으로는 무제한 재판이 계속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신보영 기자〉 2001. 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