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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분석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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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2 |
월간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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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추적]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 수사와 재판의 드라마 [99/2 월간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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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판단을 해보십시오 사형입니까, 무죄입니까.. 死刑 또는 無罪인 사건 이제 조만간 피고인 남편은
다시 고등법원 재판을 받게 된다. 만일 대법원의 취지대로 고등법원
재판에서 남편이 범인이라고 인정된다면, 즉 有罪판결을 받게 된다면
형량은 1심에서 처럼 다시 死刑일 가능성이 높다. 피고인 남편은 경찰,
검찰 수사와 세 번의 재판을 통해 단 한번도 범행을 자백한 적이 없어서
당연히 반성 등과 같은 정상 참작의 소지가 없고, 갓 돌ㅇ르 지나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를 살해하는 등 罪質(죄질)역시 매우 나쁘기 때문이다. [치과의사 母女(모녀) 살인사건] 참고로 이 사건 2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오던 1996년 6월, 법원을 담당하고 있던 기자는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깊은 인상를 받았고, 당시 검찰과 변호인, 재판부의 입장
설명을 뇌리에 남겨두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13일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한달 이상 피고인과 당시 검사, 변호인,당시 판사 등을 포함해
만날 수 있는 관련 당사자들을 대부분 만나거나 통화하고, 사건이 일어난
아파트에도 가보고, 접할 수 있는 기록이나 비디오 테이프 등 관련 자료도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채집된 여러가지 사실들을, 지금부터 되도록 객관적으로 종합해 이 사건의 실체를 소개한다. 이 과정을 통해 현재 기자가 갖고 있는 心證(심증)은 나중에 밝히겠다. 1995년 6월12일 월요일
아침 오전 8시40분 ~ 8시50분 사이 어느 시점. 서울 서대문구 불광동
M 아파트 ○동 7○○호에서 연기가 흘러나왔다. 주민의 연락을 받은
이 동(棟)의 경비원 C씨는 7○○호의 인터폰을 눌러도 응답이 없자 다용도실
창문을 뜯고 들어갔다. 자욱한 연기에 밀려 아파트 문을 열고 나왔다.
아파트 문은 보조 자물쇠만 잠겨 있었다. 심호흡 후 다시 아파트에 들어간
C씨는 안방문을 열고 일단 소화기를 뿌렸다. C씨의 신고로 출동한
소방관들은 오전 9시 30분쯤 화재를 진압했다. 안방장롱 안에서 난 불은
장롱 일부와 옷들을 태운 상태로 꺼졌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화재 사고가
아니었다. 연기가 가득한 이 아파트 안에 들어가보니 화장실 욕조에는
따뜻한 물이 가득 담겨 있었고, 그 물 위에는 이집 안주인인 崔모(당시
31ㆍ치과의사)씨와 한살배기 딸 李모양이 숨진채 떠 있었다. 崔씨의
시신은 엎드린 상태였고, 李양 시신은 위를 보고 누운 상태였다. 崔씨의 시신 목에는 끈으로
졸린 흔적이 뚜렷했고, 상하의는 벗겨져 있었으며 팬티는 무릎 부근까지
내려와 있었다. 아랫입술 안쪽에 타박상이 있었고, 왼쪽 두 번째 손톱에는
핏자국이 약간 남아 있었다. 崔씨가 입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티셔츠는
몇 겹으로 개어져 아기 욕조와 화장실 벽 사이에 있었다. 李양 시신도
목이 끈에 졸린 흔적이 뚜렷했다. 안방의 崔씨 손가방에
있던 현금과 수표 50여만원은 그대로 있었다. 방을 뒤진 흔적도 없는
것으로 경찰은 판단했다. 현관 문의 보조 자물쇠와 아파트의 창문은
잠겨 있었고, 범행도구로 추정되는 끈도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보조
열쇠 5개 중 하난는 없어져 있었다. 이 집의 나머지 한 식구인
家長(가장) 李都行(이도행ㆍ36ㆍ외과의사)씨는 이날 정식으로 개원하는
자신의 외과의원으로 출근한 후였다. 30대의 女치과의사화
말도 잘 못하는 한살배기 딸까지 잔혹하게 목졸라 죽인 후 따뜻한 물을
욕조에 담아 담가두고, 안방에 불까지 지른 후 돈이나 귀중품은 훔쳐
가지 않은 범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두 사람의 용의자
수사 초반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은 두 명이었다. 한 사람은 피해자들의 남편이자 아버지인
李都行 씨였고, 다른 사람은 숨진 崔씨와 사건 3년전인 1992년경 불륜
관계에 있었던 J모씨(인테리어 업자)였다. 수사를 담당한 은평경찰서와
초반부터 수사를 지휘한 서울지검 서부지청 安源植(안원식)검사가 그
중 범인 이라고 판단한 사람은 母女의 남편이자 아버지인 李씨였다.
사건 발생 80여 일만인 9월 2일, 李씨는 구속됐다. 이 사건 수사를 총지휘한 安검사는 강력 분양의 베테랑 검사로,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듀스 김성재씨 살인 사건의 수사도 지휘했다. 또 당시 경찰수사의 일선 책임자였던 서울 은평경찰서 金容判(김용판)형사과장은 行試를 합격하고 경찰에 투신한 경력의 소유자로, [똑똑하다]는 평을 받고 잇는 중견 간부였다. 이 수사의 核(핵)이었던 安-金팀은 기본적으로 이 사건을 풀어나가며 [머리로 하는 수사],[과학적인 수사]를 지향했고, 그래서 이 수사는 [교과서적 과학 수사의 모범사례]로 인정돼, 법무연수원에서 강력 검사 교육 자료로 사용되기까지 했다. J씨가 중간에 용의선상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그에게 알리바이가 있다는 것 때문이다. J씨는 사건이 발생한 6월12일 새벽부터 아침 사이에 회사 여직원 金모양 집에 있었다는 게 바로 밤을 같이 지냈다는 金모양 진술이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살핀다. 남편 李씨에게 불리한 정황들이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관건은 母女의 사망시각과 李씨 출근 시각의 先後(선후)문제이다. 李씨는 나중에 재판받을 때까지 일관되게 자신은 그날 오전 7시에 출근했고, 그 때까지 부인과 딸은 살아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당시 경비실에 있었음)도 李씨가 오전 7시쯤에 아파트를 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따라서 李씨가 오전 7시 에 출근 했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로 인정된다. 하지만 부인 崔씨는 그 전에 사망했을 것이라는게 법의학적인 소견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李씨는 용의자로 지목된 것이다. 李양의 경우는 영아에 대한 법의학 자료가 별로 없어 분석 대상에서 제외됐다. 만일 母女의 사망 시각이
오전 7시 이전임이 1백% 확실하다면 다른 것은 살펴볼 필요도 없이 남편
李시는 범인이다. 자신이 오전 7시에 출근할때까지 분명히 부인과 딸이
살아 있었다는, 일관된 李씨의 주장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이고 결국
살인이 일어나는 시점에 李씨가 母女와 함께 있었다는 결론이 되기 때문이다. 오전 7시 前인가 후인가 뒤에서 소개하겠지만
법의학적 소견으로 본 母女 사망 시각이 오전 7시 前이냐 後냐 하는
것은 재판 과정에서 맨 마지막까지 최대의 쟁점이 된다. 수사팀은 이외에도 여러가지 정황 증거를 제시했다. 우선 살해동기는 숨진 崔씨와 시댁식구들 사이에 불화가 있었다는 점과, 아내 崔씨와 J씨의 예전 불륜관계를 남편 李씨가 알았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 등이다.崔씨와 1898년 결혼한 李씨는 1992년부터 3년간 공중보건의로 강원도 강릉에 가 있게 되면서 아내와 떨어져 살았다. 그러다가 사건 두달쯤전인 4월에 근무를 마치고 서울로 왔다. 李씨가 강릉에 가 있던 1992년에 崔씨는 J씨와 불륜에 빠졌다. 검찰은 이 때 J씨에게 보낸 편지나 이런 내용이 담긴 일기 등이 집에 있었으므로 李씨가 이를 보고 눈치를 챘을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외향적인 아내 崔씨의
성격과 내성적인 남편 李씨 성격으로 보아 이런일로 불만을 쌓아두고
있던 李씨가 사건 전날인 6월11일 밤 개원을 앞둔 자신의 병원 사무장으로
누나(崔씨의 시누이)를 앉히는 문제를 놓고 崔씨와 말다툼을 하다가
불만이 폭발해 아내와 딸을 살해했다는 것이 검찰의 시나리오이다. 불륜을
알았고, 심지어 자신이 1~2주일에 한 번씩 서울에 올라오던 강릉 공중보건의
시절에 李양을 임신했으므로 친딸이 아니라고 의심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격자도 될 수 없는 어린 李양까지 살해했지만, 아버지로서
차마 崔씨를 살해한 끈으로는 딸을 죽이지 못하고 더 가느다란 끈을
사용했다는 게 검찰 주장이다. 이에 대해 李씨는 이 사건이 나고 경찰 수사를 받기 전까지는 아내의 불륜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변호인들은 李씨가 강릉에 가 있던 시절 두 부부는 하루에 3통씩 전화를 할 만큼 좋은 사이였다는 점 (통화 기록이 있음), 이 사건이 나기 1주인전에 李씨가 처와 처가 식구와 함께 괌에 여행을 다녀온 점 등을 들어 李씨가 아내 崔씨의 불륜을 알거나 불만 갖고 있었음을 것이라는 범행동기를 전면 부인한다. 검찰은 또 시체를 뜨거운
물 속에 넣어서 시신을 통한 사망시각 추정에 혼선을 준 점, 안방 장롱에
불을 지르면서 안방문을 열지 않아 소량의 공기가 공급되게 함으로써
천천히 화재가 진행되는 遲延(지연) 화재]를 낸 점등으로 보아 고도의
의학적, 과학적 지식을 갖고 있는 지능범이 범인이고, 이는 바로 외과의사인
李씨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지연 화재]를 낸 것은 李시가 자신이 출근
후 화재가 발견되도록 알리바이를 확보하려고 한 것이었다는 게 검찰
이야기이다. 남편은 시종일관 범행 否認 사건 얼마 전까지 공중보건의로 근무했던 강릉에서 李씨가 비디오로 대여한 [위험한 독신녀]라는 영하 내용이 이 사건 범죄 수법과 비슷하다는것도 李씨를 범인으로 볼 수 있는 간접적 정황으로 제시됐다. 경찰은 강릉의 비디오 대여점에서 李씨에게 이 비디오가 대여된 기록을 확보했지만, 李씨는 이 비디오를 본 기억이 없다고 주장했다.
직접 증거란 그 자체만으로
피의자가 범인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증거를 말한다. 검찰은 밀폐된 집에서
그 집안 가족 중 누군가가 계획적으로 저지른 殺人사건 같은 경우에는
직접 증거란 거의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가족이 범인인데 그 집에
지문이 있어봤자 그게 무슨 증거가 되며, 밀폐된 공간에서 일어난 일을
누가 목격했겠으며, 계획적으로 범행을 한 후 도구를 몰래 갖다 버리면
어떻게 찾느냐는 것이다. 또 범인이 맨손으로 칼을
잡고 피해자를 찔러서 살해한 후 현장에 칼을 두고 가고, 범인의 옷에
피해자로부터 튄 피가 묻어서 지문 나오고 혈액 감정하는 그런 고전적
단순 살인 사건은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검찰의 하소연이다. 결국 간접 증거를 통해서 범인을 판가름해야 하는데, 법원이 자꾸 직접 증거만 요구한다면 고도의 지능범, 혹은 밀폐된 공간에서의 가족에 의한 살해 사건의 범인은 처벌 안하겠다는 얘기나 다름 없다고 검찰은 말한다. 일리가 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어쨌든 결정적 직접 증거
없이 간접 증거들을 근거로 李씨는 같은 해 9월 26일 살인과 현주건조물
방화 혐으로 기소됐다. 그리고 앞에서 소개했듯이, 1심 [死刑], 2심 [無罪],
대법원 [有罪 취지의 파기 환송]등으로 승패가 엇갈린다. 3년 이상의
재판과정에서, 특히 고등법원의 2심 가정에서 검찰과 변호인은 이 간접
증거들을 중심으로 여러가지 쟁점을 두고 정말 치열하게 논전을 벌였다. 지금부터 이 사건의 최대 논란인 법의학적 접근을 중심으로 핵심 쟁점들을 골라 살펴보겠다. 이 사건에서는 이 [屍斑(시반)이라는 게 가장 중요한 쟁점이다. 문제는 崔씨 시신에서 발견된 반점들을 [양측성 시반]으로 볼 수 있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양측성 시반의 개념과 이 사건에서의 시신 상태 등에 대한 자세한 법의학적 설명이 궁금한 독자들은 뒤에 따로 마련한 독립기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일반 독자를 위해 되도록 쉬운 말로 개념을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崔씨 시신에 양측성 시반이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면, 사망 시각은 새벽 4시 전후로 추정되고 아무리 양보하더라도 오전 7시까지 늦어지기는 매우 힘들다는 게 법의학적인 소견이다. 법의학자들은 崔씨 시신에 양측성 시반이 생겼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李씨가
범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1심에서는 이런
법의학적인 소견을 받아들였고, 2심에서는 양측성 시반으로 보기 힘들다는
판단을 했다. 하지만 대법원 재판부는 다시 법의학자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단을 했다. 사망 후 시간이 흐르면서 시신은 딱딱해진다. 근육 수축 관련 단백질인 액틴과 미오신이 엉겨붙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망한 후 시간이 흐른 시신은, 운반을 위해 들어올려도 사망 당시의 자세 그대로 뻣뻣하게 고정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이런 [시신의 剛直(강직)을 [屍剛 시강]이라고 한다. [시강]에 대한 일반적 법의학 이론은 이렇다. 대체로 사망 후 2 ~ 3 시간이 흐르면 시신은 뻣뻣해지기 시작한다. 6 ~ 7 시간이 지나면 온 몸이 뻣뻣해지고 (이를 [전신 강직]이라고 한다.) 10 ~ 12 시간이 됐을 때 그 뻣뻣함이 최고조에 이른다. 그러니까 [시반]처럼 [시강]도 그 상태를 잘 살펴보고, 逆算을 하면 사망 시각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또 사망한 후 5 ~ 7시간 정도 지나서 딱딱해져 있는 시신을 어떤 이유에서든지 인위적으로 풀어서 부드럽게 하더라도 (이를 [시강의 인위적 소실]이 라고 한다.) 나중에 다시 뻣뻣해진다. 이를 再剛直(재강직)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망 후 7~8시간 이상 지난 시신은 시강을 인위적으로 풀어주더라도 재강직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이건 대강 이렇게 이해하면 된다. 죽은 후 시간이 적당히 흐른 상태에서 뻣뻣해져 있는 시신은 일부러 풀어주더라도 다시 단백질이 엉겨붙어 뻣뻣해질 수 있지만, 시간이 더 많이 흐른후에 시강을 풀어주면, 이제는 단백질도 다시 엉겨붙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이다. 6월 12일 오전 11시반에
검안했을 때 부인 崔씨의 시신은 온 몸이 뻣뻣해져 있었다는 것 (즉
[전신 강직] 상태에서 설명한 수치에 따르면 사망한 지 6~7시간이 지난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고, 따라서 崔시는 대강 새벽3시반에서 4시반 사이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게 된다(물론 11시반에서 6~7시간을 뺀 수치이다.)
이게 대체적인 법의학자들의 의견이었다. 이게 맞다면 사망 시간이
남편 출근 시각인 7시 이전이라는 것이니, 남편이 범인이라는 얘기가
된다. 또 감식팀은 시체를 살피기
위해 시강을 인위적으로 풀어주었는데, 다음날 아침 國科搜(국과수ㆍ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부검을 할 때에 보니 시신은 여전히 뻣뻣하지 않고 부드러웠다. 즉 재강직이
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누가 계속 지켜본 것이 아니니
중간에 재강직이 왔다가 풀어진 것인지 여부를 확신할 수는 없다. 하여튼 재강직이 안왔다면
이는 감식팀이 시신을 검안하던 때 이미 이시신은 사망한 지 한참, 그러니까
7~8시간 이상 지난 상태였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역시 李시에게 불리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시신이 상온인 18~20도에 있었다는 전제하에서
하는 것이다. 알다시피 崔씨 시신은 따뜻한 물 속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강이 온도에 상당히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변호인들이
2심 때 낸 자료실에서 알 수 있듯. 구체적으로 시신 부근 온도가 높을수록
시강은 빨리 온다 경찰은 욕조물의 온도가
처음 시신을 담글 때 43도였다가 검안할 때 32도 정도로 떨어졌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崔씨 시신은 사망 후 2시간 20분 내지 4시간
10분만에도 전신이 뻣뻣해질 수 있다는 게 변호인 주장이다. 오전 7시
이후에 사망햇어도, 구체적으로 말해 이를 테면 7시20분에서 8시쯤 사망했어도
11시반에 온 몸이 뻣뻣했을 수 있다는 이야기 이다. 온도의 영향 또 재강직이 오는 시간대도 시강에 걸리는 시간에 비례한다는 것이 黃迪駿(황적준), 李廷彬(이정빈) 박사 등 법의학자들의 이야기이다. 즉 시강이 빨리 온 시신은 시강을 풀어준 후 재강직이 생기느냐 여부의 時間(시간)커트라인 역시 단축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설사 崔시 시신에 재강직이 안왔다고 해도, 워낙 시강이 빨리 생긴 시신이므로 단지 재강직이 안왔다는 것을 근거로 오전 7시 이전에 사망했다는 추정은 힘들게 된다. 물론 누가 안 보는 사이에 재강직이 생겼다가 없어진 것이라면, 시강을 풀어준 오전 11시반으로부터 逆算해 시간이 그다지 흐르지 않았다는 추정이 가능하니까 당연히 李都行 피고인에게 더 유리한 정황, 즉 사망 추정 시각을 7시 이후로 늦출 수 있는 정황이다. 하여튼 2심에서 변호인단이 일본 법의학서 까지 제출하며 주변 온도가 높아지는데 따라서 시강에 걸리는 시간이 짧아짐을 주장하면서 국면이 바뀌었고, 2심은 대강 위에서 설명된 맥락에 따라서 [崔씨가 오전 7시 이후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피고인을 범인이라고 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안된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했으나 대법원은 [높은 욕조 온도가 시강을 빨리 생기게는 하지만 몇시간 씩은 아니라는 게 權一勳박사 증언이고, 재강직도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게 법의학자들의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는 취지로 간단히 2심 판결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보이고 있다. 대법원 판결의 이 판단은
온도에 따른 여러 자료, 이를테면 일본 법의학서 등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한다는 것인지, 왜 이런 자료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인지 명쾌히 밝히지
않고 있어 선뜻 공감되지 않는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얼마 전 논란이 됐던 김훈 중위 사건에서도 등장하듯 위 속 내용물이 어느정도 소화된 상태로 있느냐 하는 것도 사망 시각을 추정하는 근거가 된다. 사람이 사망한 후에는 소화활동도 당연히 중단된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식사한 시각과 먹은 음식의 종류ㆍ양 등을 안다면 위 속에서 얼마나 소화가 진행된 후 중단됐는냐를 추정해 봄으로써 대략의 사망 시각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사건 전날인 6월11일 저녁 崔씨는 친정집에서 친정어머니로부터 죽이담긴 바이오그릇을 받아왔다. 이 죽은 당근과 시금치를 썰어 넣어 끓인 것이다. 사건 전날 딸 崔씨와의 통화에서 딸이 죽을 먹은 사실을 확인했다는 친정어머니의 증언이나 사건 현장에서 죽그릇이 씻긴 채 발견된 것으로 볼 때 崔씨가 사건 전날 밤 오후 9시 무렵, 혹은 그 전에 죽을 먹은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남편 李씨는와 식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 남편 李씨는 경찰에서 사건 전날인 6월 11일 저녁에 崔씨와 같이 미역국을 먹었고, 사건 당일인 6월12일 아침에는 콩나물국으로 식사를 한 것같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李씨가 아침식사 후 그릇을 치우려고 하자 崔씨가 [나도 먹을 테니 놔두라]고 해서 밥그릇만 치우고 출근했다고 했다. 國科搜 부검 결과 崔씨의 위에서는 소화가 덜 된 죽 비슷한 상태로 미역과 쌀밥알, 생선 육편 등 음식물이 3백50g쯤 검출됐다. 검찰은 최1씨가 아침식사를 했다면 당연히 콩나물국을 먹었을 텐데 부검결과 콩나물은 안 나온 것 등을 근거로 이 내용물이 崔씨가 저녁식사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검찰 시나리오대로라면 崔씨는 새벽에 살해된 것이니 당연히 아침을 안 먹었을 것이다. 검찰은 전날 밤 9시 에서 10시 사이에 崔씨가 마지막 저녁을 먹었다는 전제로 해서 위 내용물을 분석한 법의학적 사망 시각은 대략 전날밤 11시30분 으로부터 6월12일 새벽 4시 사이라고 주장한다. 소화가 별로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저녁을 먹고 사망한 것이라면 일반적으로는 자정쯤이
사망 시각으로 보아야 하지만, 무슨 일로 (이를테면 부부싸움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소화가 잘 진행되지 않았을 테니까 새벽 4시경에
사망했어도 그 때 까지 그렇게 조금만 소화시켰을 수도 있다는 요지이다. 사실 이 사건에서는 사망한 崔씨 가 사건 전날 저녁 식사만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하느냐, 아니면 남편 李씨주장처럼 李씨가 출근하던 사건 당일 7시까지 살아 있어서 남편 출근 이후 아침을 먹은 것으로 보아야 하느냐도 큰 관건이다. 만일 저녁만을 먹은 것이라면
崔씨 위속에 남아 있는 소화물 상태로 보아 추정 사망시각은 아무리
늦추어도 아침 7시 까지는 도저히 끌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검찰은
또 崔시가 평소 아침식사를 하지않는 습관이 있다는 친정어머니의 진술도
崔씨가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근거로 삼는다. 아침식사를 했는가? 이에 대해 남편 李都行씨는
기자를 만났을 때 崔씨가 아침을 안 먹는 것은 비교적 살이 통통했던
옛날의 습관으로 사건 즈음에는 말라 있어서 아침을 먹는 편이었다고
말했다. 이제 변호인 측 이야기를 소개한다. 변호인들은 평소 崔씨가 공기밥 한 그릇을 세 끼에 나누어 먹을 정도로 小食家(소식가)였으므로, 위 속에 3백50g의 음식물이 남아 있다면 인느 식사 직후 거의 소화가 안된 상태에서 사망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는 崔씨가 남편이 출근한 다음 아침 식사를 한 직후 사망한 정황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게 변호인측의 말이다. 小食을 하는 崔씨가 저녁을 먹은 게 위 속에 이렇게 많이 남아 있는 것이라면 자정쯤 사망 했다고 보아야 하는데 이는 검찰이 주장하는 시반과 시강에 의한 사망추정 시간인 새벽 4시 전후와도 어긋나지 않느냐는 것이다. 또 崔씨가 저녁에 당근도 먹고 밥도 먹은 게 분명한데 부검결과 쌀은 남아 있고, 더 단단한 당근은 발견되지 않은 것도 위 속 내용물이 저녁식사물이 아니라는 근거라고 주장한다. 2심 판결은 [저녁 식사만을 한 후 사망했을 것이라는 前提(전제)로 위속 내용물 상태에 따라 사망시간을 추정한 법의학적 소견은 前提 자체가 불확실하므로 받아들일 수 없고, 오히려 부검에서 당근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침식사를 했을 수도 있다.]는 취지로 변호인 쪽에 가까운 의견을 보였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은 다음과 같은 요지로 이를 반박했다. 崔씨의 친정어머니 L씨는 딸이 아침식사를 잘 하지 않는다는 식사 습관을 말하고 있고, 사건 현장의 식탁과 씽크대 상황을 볼 때 아침 식사를 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李씨가 강릉에 있는 3년 동안 崔씨는 친정에 가 있었으므로 崔씨의 식사 습관에 대해서는 L씨가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결의 생각이다. 당근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당근은 친정어머니 L씨가 끓여준 죽에 들어 있었다. 그런데 L씨 말이 이 죽은
한살배기인 외손녀(즉 이 사건에서 같이 사망한 李씨ㆍ崔씨 부부의 딸)를
위해 당근을 잘게 다져서 끓인 것이므로 당근의 흔적이 보이지 않은
것은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검찰은 화재 시점이 남편 李씨의 출근 시간 전임을 입증하기 위해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한 모의화재실험을 했다. 검찰이 사용한 [해저드1]이라는 프로그램은 미국보험협회가 발화장소, 주변 온도의 변화상태, 연기 등이 퍼지는 상태를 추정, 화재시 인명구조 등에 참고하기 위해 개발한 소프트웨어이다. 경찰이 밝힌 이 프로그램 시험 결과는 방화시간이 안방문을 열었던 시각인 오전 9시10분에서 2시간 ~2시간30분 전인 오전 6시 40분~7시10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실험은 전제
두 가지에서 문제가 있다. 우선 당시 온도가 32도 내외라고 한 전제.
이는 경비원 C씨가 아파트 안방문을 열었을 때의 기억에 의존, 사건
12일 후에 나무 합판에 휴대용 가스렌지로 불을 조금씩 가하며 만져보게
해서 온도를 추정한 결과이다. 경황이 없던 C시의 기억에 의존한 이
수치의 정확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경비원 C씨가 안방문을
열었던 시각도 사건 현장 이웃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C씨 말과는 달리
9시 10분이 아니라 9시 30분 쯤이다. 이에 따르면 검찰이 추정한 발화
시각은 오전 7시~7시30분으로 밀려와 오히려 남편 李씨의 출근 시각
이후가 돼 버린다. 이 화재 실험은 사건
현장과는 여러가지 상황 입력이 다를 수 있다는 이유로 재판부에 의해서는
크게 중시되지 않았다. 변호인단은 다시 열리는 고등법원 재판에서는
화재 실험을 제대로 할 작정이다. 과연 오전 7시 이전에 지른불이 아무리
지연 화재였다고 해도 1시간40분~50분이 지난 오전 8시40분~50분에야
연기가 새 나와 그렇게 늦게 발견될 수 있는지를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지금부터는 검찰이 그리고 있는 구도대로 남편 李씨가 범인이라면 어떻게 범행이 일어났을 것인가 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범인이라면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를 한번 비교해 본다.
남편이 출근했다. 범인은 이 아파트 7oo호의 현관을 통해 들어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아파트가 7층이어서 창문 등으로 들어가기 어렵고, 또 다른 곳을 통한 침입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관으로 들어갔다면 崔씨가 문을 열어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崔씨가 문을 열어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崔씨는 겁이 많고 의심이 많아 친정 식구도 확인한 후에야
문을 열어줄 정도로 보안의식이 투철하다는 것이 가족들 증언이므로
평소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문을 안 열어주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앞에서 보았듯 부엌에는 아침 식사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으므로, 崔씨는 아침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한 후 식기까지 정리하는 것을 이 제3의 범인이 들어오는 상황 전후에 했어야 한다. 범인은 崔씨 몰래 다가가 崔씨 뒤에서 목을 졸라 살해한다. 이 과정에서 별다른 저항은 없다. 崔씨 시신에서 저항의 흔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 다음 범인은 다음의 일들을 순서에 상관 없이 이어서, 혹은 동시에 한다. <崔씨에게 썼던 줄과는 다른 가느다란 줄로 한살배기 李양의 목을 졸라 살해한다. 崔씨가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겨 몇 겹으로 갠 뒤 아기 욕조와 화장실 벽 사이에 끼워 놓는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가득
담고 사망한 母女를 욕조에 집어 넣는다. (실험에 의하면 욕조에 물을
가득 채우는 데는 5분 26초가 걸림). 목을 조른 끈 등 증거가 될 물건을
챙긴다. 안방 장롱에 불을 지르고 안방문을 약간만 열어 놓음으로써
공기가 잘 공급되지 않아 진행이 더딘 지연 화재를 낸다.) 그 다음 범인은 현관문 보조 열쇠를 찾거나, 혹은 이미 확보해 둔 보조 열쇠로 보조 자물쇠를 잠그고 도주한다. 이상의 상황이 가능한가에 대한 검찰이나 대법원 판결 시각은 부정적이다. 일어날 수 없거나 일어나기 매우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우선 범인에게 주어진 시간은 남편이 출근한 오전 7시 로부터 화재가 발견된 오전 8시 40분~50분 사이인데, 이 중에서도 8시 40분~50분으로부터 상당 시간을 빼야 한다고 본다. 지연 화재였으므로 연기가 발견된 시각으로부터 상당 시간 전에 불을 지르고 도주했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시간이 매우 빠듯하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도 그런 취지로 돼 있다. 하지만 기자가 보기에 꼭 그렇지는 않다. 범인이 지연 화재에 대해 알고 불을 지른 것이었다면 화재를 발생시키고도 밖으로 연기가 서서히 나간다는 것을, 즉 발견될 때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崔시 옷을 벗기고 물을 받고 시체를 담그는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화재를 낸 것이 문 닫고 나오기 전의 마지막 행동이라고 단정할 수 만은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보면 제3의 범인에게 주어진 시간은 대법원 판결이나 검찰 주장처럼 그렇게까지 촉박하지는 않다. 또 기사 초반에서도 언급했듯, 아버지가 아닌 제3자가 범인이라면 왜 증언도 못하는 한살배기 아이까지 구태여 더 가느다란 줄로 도구까지 바꾸어 가며 목졸라 죽였겠느냐는 의문을 검찰은 던진다. 범인이 제3자인 경우 아이가 울거나 하면 이불이나 손으로 입을 막았다가 잘못해 질식사시키는 수는 있어도, 이렇게 범행도구를 바꾸어 가며 목졸라 죽일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도, 이를테면 범인이 崔씨를 살해한 후 그 끈은 놓고 무언가 다른 일을 하다가 애가 울자 손에 잡히는 다른 끈으로 살해했다는 식으로 설명할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다. 또 崔씨가 7시 넘어서 사망했다면 시강, 시반, 위 속 내용물 등의 법의학 소견이 종합적으로 잘 부합되지 않는다는 의문을 검찰은 피력한다. 남편 출근 후인 오전 7시 이후 아침 식사한 음식물이 시신에서 발견된 상태가 되려면 최소한 어느정도 소화의 시간이 필요한데 그렇다면 살해 시점은 8시쯤이 된다. 하지만 시강과 시반에 따른 사망 추정 시각을 아무리 넓게 잡아도 8시까지 늦추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8시가 다 된 시각에 崔씨가 사먕했다면, 시강이나 양측성 시반, 위 속 내용물에 따른 법의학적 사망 시각 범위가 부합될 수도 잇다는 의견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또 제3자가 어떻게 사건 현장에 들어갈 수 있엇겠느냐고 한다. 하지만 일단 문제의 M아파트 o棟으로 들어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2심 판결문에서도 이 棟 건물로 들어가는 것도 가능하다. 또 이 棟의 경비실은 시야가 좋지 않다. 경비실 뒤편을 감아들어가는 장애인 통로 쪽으로 아예 창문 없는 벽으로 막혀 있어서 아파트 입구까지 가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다. 경비실 의자에서 아파트
정문 사이도 또 다른 벽이 있어서 커다란 死角(사각)이 생긴다. 요컨대
맘먹고 들어가겠다고 하면 경비원의 눈에 띄지 않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쉽다. 기자도 대낮에 장애인 통로를 통해 경비원의 제지를 받지
않고 유유히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다. J씨의 알리바이 검찰은 아파트 건물에는 들어가더라도 7◎◎호에는 어떻게 들어가느냐고 반문한다. 崔씨가 문을 열어줄리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도 崔씨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가능하다. 현재까지 전혀 수사선상에 오르지 않은 崔씨와 아주 친한 사람이 범인이라면 쉽게 들어갔을 수도 있다. 또 앞에서 초반 용의선상에 올랐던 J씨 도 崔씨가 모르는 사람은 아니다. 검찰은 중간에 돈 문제 등으로 J시가 崔씨의 신뢰를 잃었으므로 문을 열어 주었을 리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몇 년 전 J씨는 崔씨로부터 수천만원의 돈을 꾼 적이 있었고 이 돈을 다 갚았는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또 사건이 나던 즈음까지 J씨와 崔씨는 최소한 전화연락은 하고 있었고, 특히 사건 직전인 6월8일쯤에는 J씨가 崔씨에게 하루동안 다섯 차례나 전화를 걸었던 것이 기록으로 확인 됐다. 이에 대해 J씨는 崔씨 남편 李씨가 개업하는 병원의 인테리어를 맡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고 주장한다. J씨의 6월 11일~12일 알리바이에 대해서도 검찰은 확실하다고 하지만 이상한 점이 없지는 않다. J씨 알리바이는 앞에서도 말했듯 회사 직원 金모양 집에서 같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金양과 J씨의 진술 중 6월12일 오전 행적에 대한 것은 현실성이 없는 부분이 있다. 또 6월11일 밤에서 12일 아침 사이에 J씨는 자신의 차를 金양 아파트 단지 내에 세워 두었다고 했지만 이 아파트 경비일지에는 외부차량인 J씨 차 번호가 적혀 있지 않고, 외부 차량에 붙이는 주차 위반 딱지도 붙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며칠 전인
6월 4일과 7일에 J씨가 이 아파트에 차를 세웠을 때는 경비일지에 J씨
차번호가 꼬박꼬박 적혀 있었다. 공교롭게도 서로 사귀는 사이라고는
하지만 J씨와 金양 집에서 밤을 같이 지샜다고 하는 것은 이 날이 처음이다. 경찰은 초반 수사 단계에서 J시도 용의자로 보고 金양 등과의 분리 신문을 통해 조사했으나, 두 사람의 그날 밤 상황에 대한 세세한 진술까지 일치해 알리바이를 인정했다. J씨는 이 알리바이로 수사선상에서 벗어난 이 후로 다시 수사 대상에 오르지 않다. 남편 李씨의 혐의가 워낙 강해보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제3자 범행 가능성의 공간은 완전히 닫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李씨가 피고인이
돼 재판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는 누군가가 상당한 혐의가 있는 특정인을
제3의 용의자로 고소ㆍ고발하지 않는 한 다른 방향의 실질적 수사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한국 수사기간 구조에서 全無(전무) 하다. 남편이 범인이라면…
다음은 李씨가 범인일 경우의 검찰 시나리오를 보자. 전날 밤 李씨 누나의 병원 사무장 문제로 부부가 심각한 다툼을 한다. 그동안 쌓인 감정이 폭발한 李씨가 대체로 새벽 3시~5시 쯤에 아내를 살해한다. 李씨는 친딸이 아니라는 생각, 혹은 살아봤자 불행해질 것이라는 생각에 끈을 바꾸어 딸까지 살해한다. 그 다음 의학적, 과학적 지식을 동원, 법의학적 추론에 혼선을 주기 위해 욕조에 더운 물을 받아 시신을 넣어 놓고, 또 알리바이를 위해 지연 화재를 낸 후 7시에 출근한다. 이 경우 일반적인 상황으로 볼 때 시강과 양측성 시반, 저녁 식사를 전제로 한 위 속 내용물 등 법의학 추정사망 시간대가 대략 오전 4시권에서 겹친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여러 가지 정황상 崔씨가 오전 7시 이전에 사망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점이 많고 따라서 이런 시나리오였을 가능성은 적지 않다.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조용한 새벽에 살인까지 갈 정도로 심각한 다툼이 있었고 결국 비명도 났을 텐데 李씨 아파트 위, 아래, 옆집 어디에서도 이런 소리를 들은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다 자고 있었던
게 아니다. 새벽 2시까지 이웃의 한 주민은 깨어 있었고 또 다른 주민은
李씨집이 아닌 인근의 다른 집에서 부부싸움하는 소리는 들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 집에서 그 시간에 부부싸움한 것은 확인됐다. 또 남편이 범인이라면 굳이 화재를 낼 이유가 있느냐고 변호인측은 의문을 던진다. 화재가 없었다면 이 살인 사건은 친정어머니 L씨나 崔씨 치과병원 간호사 등에 의해 빨라도 오전10시는 돼야 발견됐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침 7시에 출근한 李씨로서는 최소한 3시간은 벌게 되는데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화재를 내서 위험부담을 안고, 구태여 일찍 발견되게 했겠느냐는 게 변호인 이야기이다. 이는 오히려 화재를 통해 자신이 탈출한 남편에게 혐의를 돌리려는 제3자 범인의 소행일 가능성이높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2심 재판부도 어느정도 공감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변호인들은 검찰 시나리오대로
한다면 부인 崔씨가 밤 10시쯤 저녁식사만을 먹은 상태이므로 위 속
내용물에 의한 추정 사망 시간은 자정쯤일 가능성이 높고, 시강이니
시반에 의한 살인 시간대는 아무리 넓게 잡아도 새벽4시 이후일 가능성이
높아서 자체모순이 있다고 보고 있다. 오히려 아침 식사를 했다는 것을
전제로 뜨거운물에 놓여진 점 등을 감안했을때 아침 8시 직전 시간대에서
세 가지 사망시간 추정이 부합하는 것에 비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사건 당일 경찰은 남편 李씨 오른쪽 팔뚝에 3개의 손톱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사진을 찍어두었다. 이 3개의 손톱자국에서 피가 나지는 않았고, 李씨 몸을 중심으로 볼 때 바깥쪽으로 흰 모양을 띠고 있었다. 이 상처에 대해 李씨의 설명은 이런 요지이다.<아내와 딸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집에 도착했으나 경찰이 제지해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당황한 가운데 문 밖에 쪼그리고 앉아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나도 모르게 왼손 검지와 중지,약지 손톱으로 눌러서 생긴 상처이다.> 하지만 검찰은 이것이야말로 李씨가 범인이라는 주요 증거라고 말한다. 일단 자기가 왼손 검지와 중지,약지로 오른팔을 잡으면 중지가 가장 바깥쪽으로 거꾸로 휜 자국은 생기지 않는다는 게 검찰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 상처는 李씨가 부인 崔씨의 목을 조를 때 崔씨가 저항하기 위해 바깥쪽으로부터 잡아 들어오며 꽉 잡아 생긴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이에 대해 변호사는 중지가 가장 길기는 하지만 이것은 그냥 잡았을 때이고 손톱으로 누르기 위해 손가락을 세워 움켜잡으면 움켜잡을수록 중지는 몸 안쪽으로 들어와 결국 손톱 자국은 바깥쪽으로 휜 모양을 하게 된다고 반박한다. 또 사람이 목을 졸리게 되면 본능적으로 목의 줄을 잡게 되지 뒤의 목조르는 사람 팔뚝까지 손을 뻗어 잡게 될 가능성은 적다고 주장한다. 독자 여러분도 한번 왼손 가운데 손가락으로 오른 팔뚝을 잡아보고, 어떤 형태로 자국이 생기는지 실험해 보기 바란다. 이에 대해 黃迪駿 박사는 李씨 말처럼 스스로의 손으로 다른 팔을 꽉 잡을 경우에도 손톱 상처가 바깥쪽으로 휜 형태를 띨 수도 있다는 외국 법의학 자료가 있다고 말했다. 그 형태만으로는 李씨가 잡아 생긴 상처인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반면 李廷彬 박사는 상식적으로 보아 李씨 말처럼 상처가 생기는 것은 부자연스럽다고 지적한다. 이 손톱 자국 상처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이 상처는 스스로 왼손으로 꼭 잡아 생긴 상처로는 부자연스럽고, 李씨의 해명이 의심스럽다]며 李씨가 범인일 가능성이 있는 정황으로 보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 2심 주심판사였던
姜熏(강훈)변호사는 검찰 주장처럼 뒤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끈으로
목을 조르는 사람의 오른쪽 팔을 뻗어 잡는다는 것은 위치상 힘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姜변호사는 재판 당시 집에서 부인과 함께
간이 실험을 해보기까지 했다고 한다. 대법원 판결에서 유일하게 피고인 李씨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는 증거로 본 것은 崔씨가 끼고 있던 콘택트 렌즈이다. 사망한 崔씨는 발견 당시 얼굴에 화장을 하지 않은 채 콘택트 렌즈를 끼고 있었다. 친정어머니 L씨 증언에 따르면 崔씨는 평소 콘택트 렌즈를 끼고 생활하다가 저녁에는 렌즈를 벗고 화장을 지운 후 세수를 하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콘텍트 렌즈를 끼고 화장을 한 후 출근하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화장을 하지
않은 채 콘텍트 렌즈를 끼고 있는 상황은 평소대로 라면 저녁에는 발생하지
않고 아침에만 일어나는 것이다. 이부분은 2심에서도 피고인 李씨가
범인이 아닐 수 있는 증거 중 하나로 인정됐고, 대법원에서도 비슷하게
인정하면서 다시 열리는 고등법원 재판에서 좀 더 따져 볼 것을 권하고
있다. 물론 검찰 주장처럼 사건 전날 崔씨와 李씨가 심하게 다투었다면
화장만 지운 채 밤늦게까지 렌즈를 빼지 않고 있다가 변을 당했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검찰이 내세우는 유력한 정황 증거중 하나가 [우유병]이다. 崔씨의 친정 어머니 L씨에 따르면 崔씨는 딸 李양에게 주기 위해 밤새 3개의 우유병을 사용했으며, 李양의 평소 습관은 오후 9시에 반병, 자정쯤 반병, 1병씩을 마시는 것이었다고 한다. 李양 출생 직후부터 이 사건이 나기 보름쯤 전까지 친정어머니 L씨가 李양을 직접 키워왔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李양에 대해서는 L씨가 가장 잘안다는 것이 검찰 주장이다. 사건 보름쯤 전부터 강릉에서 근무를 마치고 온 남편과 제대로 된 살림을 시작한 崔씨는 친정어머니 L씨ㅣ가 소독해 준 우유병을 가져다 쓰고 아침에 다시 가져가 L씨에게 소독을 맞길정도로 친정어머니에게 많이 의존했다고 한다. 또 L씨는 李양 입맛에 맞추어 분유와 이유식을 섞어서 담은 1회용 분유통 2개도 崔씨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건 현장에서는 3개의 우유중 1개에만 1백30㎖ 정도의 우유가 남아 있었고, 나머지 2개의 우유병은 언뜻 보아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상태에서 발견됐다. 사용흔적이 없어 보이는 2개의 우유병 중 하나는 우유병과 병마개, 젖꼭지 등이 분리돼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병마개, 젖꼭지 등이 완전히 닫힌 상태였다. 또 1회용 분유통 2개 하나만 사용되다 말았고, 나머지 하나는 그대로 남아 있는 채 발견됐다. 검찰은 이런 일이 생긴 것은 李양이 한두번쯤 우유를 먹은 후인 자정 무렵 혹은 새벽에 살해됐기 때문이며, 따라서 아침 7시 까지 살아 있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아침까지 살아 있었다면 우유병 3개가 다 사용된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2개의 우유통이 사용된 흔적이 없고, 1회용 분유통 2개도 다 사용됐어야 하는데 꽤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검찰측은 특히[재판과정 내내 냉정할 정도로 침착함을 잃지 않던 피고인이 남자로서는 미처 생각할 수 없었던 공격을 당한 것임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검찰 주장은 2심 과정에서 조금 훼손됐다. 우유병 2개가 사용 흔적이 전혀 없다고 검찰은 주장했었는데, 2심 현장 검증 과정에서 그 중 하나, 즉 우유병과 병마개, 젖꼭지 등이 분리된 우유병 밑바닥에서 0.5㎝정도의 말라붙은 찌꺼기가 발견된 것이다. 이를 근거로 변호인은 崔씨가 꼭 우유병 3개를 닦지 않은 채 사용한 것이 아니라 닦아가면서 썻을 수도 있는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즉 검찰 설명처럼 우유병 3개를 전혀 닦지 않고 차례로 우유를 담아 딸에게 먹이는 데 사용한 후 다음날 친정 어머니에게 우유가 묻어 있는 병을 그대로 갖다 주는 것이 아니라, 우유병을 사용한 후 닦아서 다시 우유를 담아 딸에게 먹이는 식으로[중복 활용]을 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병마개, 젖꼭지 등이 분리된 우유병 밑바닥에서 찌꺼기가 발견된 정황도 이런 [중복 활용]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보면 자연스럽다고 변호인측은 말한다. 또 친정어머니가 타 준 1회용 분유 통의 경우도 崔씨가 타 준 1회용 분유통의 경우도 崔씨가 이를 잠이 덜 깬 새벽이나 바쁜 아침에 사용하려고 놓아두고, 시간이 넉넉한 저녁이나 자정에는 직접 분유와 이유식을 타 먹였을수도 있는게 아니냐는 게 변호인측의 주장이다. 따라서 우유병이나 1회용
분유통 상태를 갖고 母女가 아침까지 살아 있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는 것이다. 또 변호인측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검찰 주장대로 부인 崔씨가 친정 어머니가 씻어준 우유병과 만들어 준 1회용 분유통을 그대로 사용하고 자신이 씻거나 분유를 타는 일이 없다면, 우유병 단 1개만 사용된 채 그나마 반이 남아 있고, 1회용 분유통 2개 중에서도 1개만, 그것도 반 정도만 없어진 상태는 李양이 우유를 한번만, 많아야 두 번 먹은 후 변을 당했다는 결론이 된다. 그렇다면 모녀의 사망 시각은 자정 이전이라는 것인데 이는 검찰의 다른 설명, 예컨대 시반 이나 시강에 따른 사망 추정 시각인 새벽 4시경과도 맞지 않는다.> 이에 대해 검찰은 병마개, 젖꼭지 등이 분리된 채 밑바닥에서 찌꺼기가 발견된 우유병의 경우 崔씨가 [중복활용]을 위해 닦은 것이 아니라 눈이 침침한 崔씨 친정어머니가 딸에게 갖다 주기 전 소독이나 설거지를 하는 과정에서 채 못 닦고 남아 있었던 부분일 가능성이 높다고 반박한다. 또 우유를 1~2회만 李양에게 먹인 상황에서 말다툼이 벌어져 더 이상 우유를 먹이지 못한 채 새벽쯤 사건이 발생했다면 여러 가지 정황이 자연스럽게 부합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친정어머니에게
우유병 소독까지 맡길 정도로 친정에 의존적인 崔씨가 이날만 유독 자신이
우유병을 닦아가며 사용했다고 보는 것은 경험칙에 반하는 것이라는
게 검찰 주장 이다. 李都行씨는 사건 한 달 후인 1995년 7월13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본인 동의 하에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받았다. 이 검사는 국내에서 가장 성능이 우수한 기계와 30년 가까운 경험이 있는 노련한 검사관에 의해 행해졌다. 이 검사에서 채택된[緊張頂點(긴장정점)검사법] 이라는 기법은 진범만이 알 수 있는 내용에 대해 여러가지 보기를 묻고 다시 역순으로 질문해서 특정한 보기에서 異常(이상)반응이 일어나는지를 알아보는 방식이다. 즉 이 사건에서는 이를 테면 도대체 범행 시각이 새벽 2시인지, 3시, 4시, 5시, 6시 인지는 진범만이 알수 있는 것이고, 이것을 순서대로, 또 역순으로 용의자에게 물어보아 특정한 시각에서만 異常(이상)반응이 일어난다면 그 용의자는 그 시각에 범행을 저지른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李씨에 대한 검사에서는 살해 시각, 살해 장소(거실인지 안방인지), 장소를 더 세분한 특정 살해지점, 피해자 두 사람을 살해한 시간 간격, 살해 후 나간 시각 등 5개 항목에 대해 질문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4가지 항목에서 양성반응, 즉 李씨가 범인으로 추정되는 반응이 나왔다. 이 결과를 검찰은 李씨가 범인임을 보여주는 신빙성 있는 증거로 보고 있다. 하지만 변호인측 의견은 다르다. 李씨가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받기 이전에 이미 경찰 조사를 여러 차례 받았고, 그 과정에서 살해 시각이나 지점등에 대해 강도 높은 신문을 받았기 때문에 진범 여부와상관 없이 이미 선입견이 생겨서 특정한 질문에 대해 異常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비록 李씨가 용의자로 조사를 받기는 했지만 정확한 살해 시점이나 지점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신문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거짓말 탐지기 5가지 항목 중 4가지에서 양성 반응이 나타난 李씨는 범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반박한다. 2심 판결은 여러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고, 피고인 李씨가 이 검사 결과를 증거로
사용하는데 동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죄 증거로 할 수 없다고 판단햇고
대법원 판결은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판단을 명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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