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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분석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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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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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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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추적]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 수사와 재판의 드라마 [99/2 월간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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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설명한 여러 쟁점들을 놓고 3년여에 걸친 재판이 진행됐다. 60여명에 가까운 증인 심문과 3차례의 현장 검증을 거친 1심에서 재판부인 서울지법 서부지원 형사합의부(당시 재판장 孫容根ㆍ손용근)는 1996년 2월23일 피고인 李씨에게 死刑(사형)을 선고했다. [법관도 인간인 만큼 허점은 없었는지 두려운 마음뿐]이라는 서두를 깔고 선고했지만, 孫재판장은 여러 증거와 증언으로 보아 李씨가 99.9% 범인이라는 확신이 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私席에서 했다고 한다. 그러나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4부(당시 재판장 姜完求ㆍ강완구)는 같은 해 6월26일 [진범이 누구인지는 神(신)만이 알 것]이라는 말과 함께 無罪를 선고했다. 검찰의 여러 가지 간접 증거들에 대해 2심 재판부는 [법관이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신을 갖게 한다고 볼 수 없다.]며 증거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언뜻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 이 대판부의 이 표현은 형사 재판 판결문에 종종 등장하는 문구이다. 이해를 위해 [합리적]이라는 단어만 빼고 다시 읽어보면, [법관이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신을 갖게 한다고 볼 수 없다.], 즉 검찰의 주장이나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의심의 여지가 없을 만큼 확실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이 사이에 끼어 들어간 [합리적]이라는 말은 법관이 증거를 의심하더라도 [상식선 에서], [합리적으로]해야지 [터무니 없는] 의심까지 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목격자 10명 쯤이 모두 같은 사람을 법인으로 지목하고, 지문도 묻어 있는 등 직접 증거도 확실히 있는 살인사건에서 법관이 아무 근거 없이 [아마 증인들이 모두 헛 것을 보았을 것이고, 지문은 우연히 비슷한 사람의 것이 잘못 감식됐을 거야],[다들 짰을지도 몰라]하는 식으로, 증거들을 의심하는 것은 [합리적 의심]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재판에서 유 무 죄 판단은 다른 것에 구속 받지 않고 법관의 양심과 재량에 맡겨져 있더라도 이렇게까지 하면 안 된다는 게 기본적인 대법원 판례이다. 요컨대 2심 재판부는 [李씨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검찰의 주장이나 증거들이 판사가 볼 때 의심의 여지가 있어서 유죄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이로부터 2년 4개월여가
흐른 지난 11월13일. 예상을 깨고 대법원 제2부 (주심 李容勳ㆍ이용훈
대법관)는 이 사건을 有罪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破棄 還送(파기 환송)]이란
말은,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는 신문
기사 표현의 정식 용어로, 대법원이 볼 때 고등법원 판결 중에 법률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어서 이 판결을 깨고 다시 재판해 보라고 고등법원
내려 보냈다는 뜻이다. 대법원의 2년 4개월
長考 3심제를 기준으로 할 때 2심(대체로 고등법원에서 맡지만 지방법원 항소재판부에서 맡는 경우도 있음)의 판결을 어느 한쪽이든 승복하지 않으면 대법원으로 上告(상고)하게 된다. 이때 대법원이 이 상고를 기각하면, 즉 받아들이지 않으면 2심 판결은 최종 확정된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대법원이 2심 판결을 깬 후 아예 스스로 판결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대법원이 2심 판결을 깰 경우 보통 2심을 했던 법원으로 다시 내려 보낸다. 다시 재판해보라고 내려보내는 파기 환송 판결문에서도 대법원 재판부는 스스로의 판단을 담는다. 이 사건의 대법원 파기 환송 판결문은 [간접 증거 하나하나가 증명력이 완전하지 않다고 해도 전체 증거의 종합적 증명력이 완전하지 않다고 해도 전체 증거의 종합적 증명력이 있다면 유죄를 인정할수 있다고 할 수 있다.]는 [이례적]이고 [공격적]인 전제를 하고 있다.그리고 이 전제 하에서 이 판결문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요컨대 [이렇게 볼 때 2심 판결이 개별 증거를 의심한 것으로 인해 그 증거 전체의 종합적 증명력까지 의심한 것은 합리적인 의심을 한 것]이라는 취지이다. [이례적],[공격적]이라고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직접 증거가 아닌 간접 증거로도 有罪를 증명할 수 있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례는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간접 증거가 인정되는 형사 사건이 바로 소매치기와 姦通(간통)의경우이다. 소매치기는 그 수법상 용의자가 그 범행을 했다고 완전히 입증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여러 간접 증거만으로 재판부는 有罪를 쉽게 인정한다. 간통의 경우도 꼭 두 남녀가 성 관계를 가졌느냐는 것보다 같은 공간에 있었다든지 하는 정황만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강력 사건에 가까울수록, 그러니까 대표적으로 살인 같은 사건의 경우에 있어서 판사는 더욱 엄격한 증거를, 그러니까 직접 증명력이 아주 높은 것을 요구하게 된다. 일단 有罪를 인정한 이후에 선고할 형량이 워낙 무겁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매우 특이한 것은 살인사건의 판단에 있어서, 더구나 유죄가 인정되면
死刑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은 이런 사건에 있어서 [간접 증거가 개별적으로
완전한 증명력을 갖지 못하더라도 종합적 증명력이 있으면 有罪를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단을 판결문에서 명시적으로 밝혔다는 점이다. [용감한 대법원 ]판결 내용면으로는 [직접 증거가 없는 강력 사건에서도 간접 증거의 종합적 증거 능력까지 적극적으로 인정해 유죄 판결을 한다]는 새로운 형사 판결 원칙이라는 식의 평가를 받기도 했다.이에 대해 고려대 법대 김일수(金日洙)교수는 [이 판결은 형사 정책적으로 증가하는 범죄에 대한 대책으로 가벌성(可罰性)을 넓힌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증거법상으로는 후퇴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이 대법원 판결은 잘잘못을 떠나 법조계 내에서 [매우 용감한 판결]이 라는 평가를 받았다. [용감한 판결]이라는 표현에는 이런 속사정이 있다. 이런 살인 사건 같은 경우 법원이 증거불충분 등을 이유로 [無罪]를 선고하면 흔히 언론으로부터는 [법원의 엄격한 증거주의 재천명]이라든가 [아흔 아홉 명의범인을 놓치더라도 한명의 억울한 피고인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보인 판결], [의심이 갈 때는 피고인의 이익이라는 원칙을 확인한 판결]이라는 식으로 호의적인 평가를 받게 마련이다. 사실 이런 말들은 형사 재판의 기본원칙으로서 당연히 훌륭한 가치들이다. 그런데 법조인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렇게 피고인이 결백을 주장하며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는 강력 사건의 경우 판사 입장에서 마음 편한 것은 無罪 판결을 내리는 것이라고 한다.검찰 말고는 누가 원망할 사람도 없고, 혹시라도 무죄 선고를 받은 피고인이 정말 범인이었다고 하더라도 [검찰이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빠져나갈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고인이 결백을 강력히 주장하는 이런 사건에서 有罪를 인정하는 것은 판사에게 위험 부담이 있다. 뒤에서 자세히 소개할 [K씨 사건] 처럼 나중에 혹시라도 제3의 진범이 잡히거나, 정말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범인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살인 용의자 등에 대해 증거불충분 등으로 무죄를 선고하는 재판부에 대해 검찰이 기자들과 만난 사석에서 재판부에 대해 [비겁하다], [면피성 판결]이라는 비난을 하기도 하는 것은 이런 사정을 뒤에 깔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그냥 상고 기각으로 무죄를 확정했으면 속 편했을 것을 구태여, 고심 끝에 부담을 안고 有罪쪽으로 뒤집었다는 의미로 이번 대법원 판결을 [용감하다]고 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 대법원 파기 환송 판결에는 피고인이 有罪 아니냐]는 재판부의 의지가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사건은 고등법원에서 다시 재판 받더라도 새로운 가능성 등이 제시되지 않는 한 無罪로 뒤집어질 가능성은 적다는 게 변호사나 판사들의 예상이다. 법원 분위기로 보아 대법원의 뜻을 거스르기 힘들 다는 것도 있지만 법률적으로 이런 증거 판단의 경우 하급법원은 대법원 판결에 얽매이도록 돼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有罪가
인정되면 형량은 死刑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많이 깍 인다
해도 無期(무기)징역이라고 보아야 한다. 앞에서도 밝혔듯, 李씨를 有罪로
판단한다면, 그는 한 번도 자백도 하지 않았고 따라서 죄를 뉘우친 적도
없고, 아내는 물론 한살배기 딸까지 잔인하게 죽인 후 이를 위장하기
위해 시신을 뜨거운 물속에 담그고 주택 밀집 지역인 아파트에서 불까지
지른, 정상참작의 여지가 거의 없는 범죄자가 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사건은 [교과서적인 과학 수사]로 검찰과 경찰 내부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이 수사에서도 대단히 잘못된 실 수가 여럿 있었다. 많은 수사가 그렇듯 사건 발생 후 며칠 사이에, 즉 초동수사에서 많이 저질러졌다. 한국에서 사건이 가장 많은 首都(수도) 서울의 경찰청 감식 반이 출동했고, 수사 경찰과 검찰도 앞에서 말했듯 실력 있는 팀이었다. 그런데도 안타까운 실 수는 많았다. 기자는 이 사건을 취재하며 이 사건의 교훈을 일선 사건 감식 팀 이나 일선 수사 관계자들이 가슴 깊이 새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차례 간절히 했다. 초동수사 과정의 가장 큰 실 수는 사망한 崔씨의 손톱을 잘라두지 않은 것이다. 李廷彬 박사는 이런 말을 했다. [살해당한 여자의 시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손톱입니다. 대부분의 여자는 죽기 직전까지 이 손톱으로 저항하거나 무언가를 긁게 됩니다. 그래서 손톱 안의 물질을 잘 분석하면 범인이나 범행장소 등을 추정할 근거를 발견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崔씨의 경우도 감식이나 부검 과정에서 손톱을 잘라두었다면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남편 李씨의 오른쪽 팔뚝에 상처를 낸 것이 정말 崔 씨였다면 손톱에서 李씨 피부 물질이 검출됐을 가능성이 높고, 이것은 직접 증거까지도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만일 제3의 인물의 피부 물질이 검출된다면 이를 근거로 남편의 혐의가 벗겨지는 계기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상처의 방향이 바깥 쪽이니 안쪽이니 하는 피곤한 논쟁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손톱을 잘라두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이라는 법의학자도 있었는데, 감식 팀이나 부검의 는 이를 소홀히 한 것이다. 둘째, 부검 과정에서
여러 각도의 사진을 찍어두지 않은 것도 큰 결함이다. 양측성 시반에
대한 독립 기사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여러 각도의 시신 사진을
찍어두었다면 崔씨 시신 앞부분에 얼마나 시반이 형성돼 있었는지 자료를
남길 수 있었고, 그랬다면 崔씨 시신에 양측성 시반이 생겼는지 여부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이 필요 없었다. 물론 남편 李씨가 범인인지 아닌지에
대한 중요한 근거가 돼 有罪를 확실히 하거나, 혹은 李씨를 억울한 피고인으로
몰고 가지 않을 수 있었다. 이렇듯 중요한 두 가지 증거들이 누락된
채 시신은 火葬돼 버렸다. 火葬 돼 버린 시신 셋째, 현장 감식 과정에서
시신의 直腸(직장) 온도를 재 놓지 않았다. 直腸이란 大腸(대장) 말단부로
항문에 이르는 부분으로 항문에 체온계를 집어 넣어서 측정하게 된다.
시신의 직장온도는 사망 직후부터 꾸준히 하락하므로 사망 시각 추정에
중요 하다는 게 법의학자들의 말이다. 하지만 재놓지 않았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는데, 뒤에서 밝히겠다. 넷째, 감식 당시 시신이 담겨 있던 물의 온도도 재 놓지 않았다. 이게 필요해지자 경찰은 검안 4일 후인 6월16일, 당시 욕조에 손을 담가보았던 경찰관이 기억에 의존, 여러 온도의 물에 손을 대보게 하고 [이 정도 따뜻했던 것 같다]는 물의 온도를 사건 현장의욕조 온도의 추정치(32도)로 내놓았다. 앞에서 보았듯이 이 물의 온도는 시강, 즉 시체의 경직에도 큰 영향을 주지만 그 자체로서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사건에서는 원래 급탕 공급되는 온도와의 차이를 통해 범인이 물을 틀어 욕조에 받은 시각을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심 주심판사였던 姜변호사는
이부분도 집에서 실험을 해보았다고 한다. 따뜻한 물에 손을 넣어 느낌을
기억하고, 부인에게 온도를 측정하게 한 후 며칠 후 기억에 의존해
온도를 맞추어 보았는데 정확도가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다섯째, 崔씨의 직접
사인인 시신 목 부위의 물질 채취에 소홀했다. 끈에 강하게 졸렸던 목부위에
붙은 물질을 잘 채취해 조사했더라면 범행에 사용된 끈의 성분 등을
알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감식 당시의 비디오를 보면 감식 팀은
솜으로 崔씨의 목 부위를 정성껏 닦아낸다. 黃박사는 [고의는 아니었겠지만
증거를 인멸하는 수준]이라고까지 비판했다. 여섯째, 앞에서 설명했듯
사용되지 않아 깨끗한 것이라고 검찰이 주장했던 우유 병에 우유찌꺼기가
붙어 있었다. 이는 2심에 가서야 변호인 단이 발견했다. 검찰측이 주요
증거도 제대로 보지 않은 것이다. 이쯤에서 참고로 우리나라 강력 사건 수사와 재판을 통틀어 가장 큰 실수와 誤判(오판)으로 회자되는 [K씨 사건]을 소개한다. 이 사건은 그 구도가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母女살인 사건과 매우 비슷하다. 그래서 [母女사건]에서 無罪를 선고했던 2심 재판부는 판결 과정에서 이 사건을 많이 참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간단히 개요를 살펴본다. 1992년 11월29일 아침 서울 관악구 모여관 203호에서 18세의 카페 종업원 李모양이 목이 졸려 숨진 채로 발견됐다. 이를 신고한 사람은 그날 새벽 3시반쯤 李양과 이 여관에서 함께 투숙했던 K씨였다. K씨는 오전 7시쯤 혼자 여관을 나가 인근의 직장에 출근했다가 오전 10시쯤 李양을 깨우기 위해 여관방에 돌아와보니 李양이 숨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K씨는 범인으로 지목돼 구속됐다. 검찰이 내세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그는 숨진 李양과 함께 투숙한 사람으로 밤새 같이 있었다. 오전 7시에 나간 것은 인정되지만, 직장에 나갔다가 여관방에 李양이 있는지 전화로 확인도 해보지 않고 구태여 李양을 깨우기 위해 10시에 돌아왔다는 게 어색하다. 또 李양이 결혼해달라고 졸라 갈등이 있었고, K씨가 李양이 밴 자신의 아이를 낙태하게 한 사실까지 있는 K씨가 여관을 나간 오전 7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여관에 들어온 사람은 없었다고 진술하고 있으며 여관 문이 아닌 창문 등으로 누군가가 침입한 흔적은 없다. K씨는 투숙 당시 여관 주인에게 아침 8시에 인터폰을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주인이 실수로 7시에 인터폰을 했지만 K씨는 즉시 응답했다. 그가 이미 깨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전황이다…> 여기에 K씨는 경찰수사과정에서
한 때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까지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법의학적 소견이다. 李양 시신의 시강이 전신에 나타난
점이나 胃 내용물의 소화 정도, 直腸(직장)온도, 시반이 뚜렷한 점 등으로
미루어 사망 시각은 오전 5시 이전으로 추정됐다. 모녀 살인 사건과
흡사하게도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용의자는 현장을 오전
7시에 나갔다고 말하는데 법의학적 사망 시각 추정치는 그 이전이라는
것이다. 흡사한 두 사건의 구도 K씨가 범인이 아닐 가능성을 보이는 증거도 있기는 좀 있었다. 李양이 숨져 누워 있던 침대 이불에는 K씨것이 아닌 남자 구두 발자국이 2개찍혀 있었고, 또 방에서 발견된 휴지뭉치에서는 K씨와 李양이 이외에도 다른 사람의 체액이 묻어 있었다. 제3자가 들어와 범행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이나 법원 2심까지 이 증거들은 인정되지 않았다. 우선 발자국은 다른 범인의 것이라면 범행 수법상 어떻게 2개만 생겼겠느냐는 의심을 받았다. 휴지 뭉치에 묻어 있는 체액의 경우는 그 여관 방안에 다른 새 휴지가 많았는데 그걸 사용하지 왜 하필이면 K씨와 李양이 사용한 휴지 뭉치를 사용했겠느냐는 의심을 받았다. 오히려 K씨가 다른 사람의 범행으로 조작하기 위해 만든 게 아닐까 하는 것이 당시 검찰이나 법원의 속내였다고 한다. 사실 법의학 소견 등을 포함, 이 정도 수준의 증거와 정황을 놓고 본다면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K씨가 범인일 것이라는 단정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지 모른다. 자백을 번복하고 [나는 범인이 아니다]라고 계속 주장하던 K씨는 1992년 말 살인 혐의로 기소됐고, 결국 유죄가 인정돼 1993년 1심 2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 받았다. 당시 판결문을 읽어보면 여러 가지 증거 중에서도 시강과 胃속 내용물의 소화정도, 시반 등 법의학 소견이 유죄 판단에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음을 알수 있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던 1993년 말 엉뚱한 일이 생겼다. 노상강도로 서울 관악경찰서에 검거된 당시 19세의 S군이 여죄주사 과정에서 우연찮게 이 살인 사건의 범인임이 드러난 것이다. 진범은 따로 있었다. S군은 전날 습득한 열쇠를
갖고 물건을 훔지기 위해 이 여관 203호에 사건 당일 오전 7시에서 9시
싸이에 들어갔다. 李양에게 들키자 엉겁결에 목졸라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아니, K씨가 범인이라던 그 많은 간접 증거나 7시에서 10시사이에 여관에
들어간 사람이 없었다는 여관 주인 진술 같은 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 우선 S군은 여관 카운터
앞을 기어 들어갔다. 당연히 여관 주인은 못 보았다. 그리고 203호에
들어가자마자 李양에게 들키자 침대로 바로 뛰어올라 李양을 살해했기
때문에 찍힌 발자국은 2개 밖에 없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K씨와 李양이
쓰고 떨어뜨려 놓은 휴지에 S군 체액이 묻었다. 똑같은 감식반장 그러면 시강, 시반 胃 속 내용물, 직장 온도 등 분석을 통해 사망시각이 K씨 출근 전이라던 법의학적 소견은? 틀린 것이었다. 정말로 일어나기 힘든 공교로운 우연들이, K씨로서는 확률이 지극히 낮은 불운한 惡運(악운)들이 겹치고 겹쳐서 범인으로 단정된 것이다. 진범이 잡힌 후인 1994년 1월 26일, 대법원은 K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無罪 취지로 파기 했다. 진범이 잡히기 전부터 대법원은 원래 無罪 판결을 쓰고 있었다는 게 법원 관계자의 말이지만, 그 반대였다는 말고 있다. 만약 대법원에서 K 씨에게 有罪 확정 판결을 내렸는데 그 후에 진범이 잡혔더라면 이 사건은 법원으로서는 稀代(희대)의 誤判]으로 남았을지 모른다. 이 사건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1994년 대검 강력부는 [K씨 사건을 계기로 본 강력 사건의 수사상 문제점과 대책]이라는 1백23페이지짜리 소책자까지 만들기도 했다. 이 책에서 검찰은 현장 감식을 위해 출동했던 서울경찰청의 金모 반장이 경험 미숙으로 시강이나 시반, 직장온도 측정 등을 서툴게 했던, 것으로 판단했다. 사망 시각을 추정하는 것이야 법의학자들이 하는 일이지만, 그 추정의 근거가 되는 기초 자료는 결국 초동 수사를 통해 내놓는 감식팀의 의견이다. 그러니까 감식팀이 미숙해서 틀린 자료를 법의학자들에게 入力(입력)하게 되면 出力(출력), 그러니까 법의학적 판단도 틀리게 나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 그리고 법의학적 추정이라는 것을 단순한 참고 자료를 넘어 전적으로 신뢰할 자료로 사용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는 교훈을 이 사건은 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일이 하나 있다. 이 [K씨 사건]에서 결과적으로 [서툴고 미숙한 현장 감식]을 하고 틀린 시강, 시반 등의 자료를 법의학자에게 제공한 셈이 된 서울경찰청 金 반장은, 공교롭게도 母女살인 사건의 현장감식을 맡았던 바로 그 金 반장 이다. 동일 인물이다. 아까 직장온도를 재지
않은 사정을 뒤에 밝히겠다고 한 부분을 이제 소개 한다. K씨 사건에서
직장 온도를 잘못 쟀다가 곤욕을 치렀던 金 반장은 모녀 살인사건에서는
아예 직장온도를 재지 않은 것이다. 金 반장은 이 사건 당시 수사 관계자에게
[물 속에 담겨진 시신의 직장 온도는 별 의미가 없고 오히려 혼선이
생길 것 같아 재지않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피고인 李都行은 정말 부인과 딸을 죽이고도 범행을 끝내 부인하는 잔인한 철면피 범죄자일 수 있다. 또는 영화 [쇼생크 탈출]의 팀 로빈스타 [도망자]의 해리슨 포드처럼 억울하게 아내를 죽인 남편으로 몰린 것일 수도 있다. 유무죄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원론을 설명한다. 형사 재판의 [有罪]란, 특히 이런 살인 사건 같은 경우의 [有罪]란, 앞에서 설명했듯, 합리적인 선에서 의심을 해볼 때 피고인이 범인 이라는 확신이 든다는 뜻이다. 반면 [無罪]라는 말은 원칙적으로 [無罪]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無罪]란 [검찰 주장대로 피고인이 범인 같긴 하지만 有罪 선고를 할만큼 확실히 믿어지진느 않는다.]는 뜻일 수도 있고, [피고인은 결백해 보인다.]는 적극적 無罪 심증까지 포함돼 있을 수도 있다. 刑事 재판부과 달리 民事 재판에서는 원고와 피고의 주장이 서로 팽팽히 맞서서 어느 쪽이 옳은지 51대 49로 잘모른다고 해도, 판사는 더 믿음이 가는 51쪽의 손을 들어주게 돼 있다. 그러니까 판단이 틀릴 가능성을 감수하고도 재판을 끝낼 때는 설득력 있는 쪽의 勝訴(승소)를 선언해야 하는 것이 民事 재판의 원칙이다. 하지만 형사 재판에서는 검찰 쪽에 확실히 입증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비록 피고인보다 검사 말에 더 믿음이 가더라도 검사 주장에 의심의 여지가 남으면 無罪를 선언하게 된다. 이 글을 다 읽고 난 지금 [범인이 분명하네], [대법원이 판결 잘했네]라고 생각할 독자도 있을 것이며, [다른 사람이 범인일 수도 있고, 피고인이 결백한 것 같은데 억울하겠다]고 느낄 독자도 있을 것이다. 後者(후자)의 두 경우라면, 그리고 만일 독자가 이 재판의 배심원이나 재판장이라면 [無罪]무죄를, 맨 앞의 경우라면 [有罪]를 선택하면 된다. 수사-재판 기록과 각종 자료, 그리고 피고인 李都行씨를 만나 본 기자의 지금 생각은 이렇다. [李都行씨가 범인일 가능성이 그렇지 않을 가능성보다는 높다. 하지만 지금까지 확보된 증거만으로 볼 때 李씨가 범인이 아니고 제3자가 범행을 저질렀는데도, 공교롭게 李씨에게 불리한 정황들이 연이어 생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나아가 정말 다른 범인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잘모르겠다.] 잘 모를 때는 [無罪]를
선고하라는 것이 한국 형사법의 정신이다. 독자에게 묻고 싶다. 피고인
李都行은 有罪인가, 無罪인가?⊙ 숨진부인
崔씨의 허벅지 앞부분에 생긴 반점은 屍斑(시반)인가? [屍斑(시반이란 간단히 말해 屍身(시신)에 생기는 斑點(반점)이다. 사람이 죽으면 피가 안 돌게 되고, 우리 몸은 미세한 赤血球(적혈구)등 의 무게조차 지탱할 힘이 없어진다. 그래서 중력 때문에 자연스럽게 낮은 곳으로 피가 가라앉아 고이게 되고 赤血球 때문에 피가 몰려 있는 피부가 암적갈색을 띠게 된다. 이게 바로 [시반]이다. 대체로 사망후 30분 정도가 지나면서부터 생기기 시작한다. 누운 상태에서 시체가 발견됐다면 등이나 엉덩이, 허벅지 아래쪽, 종아리 등에 시반이 있을 것이고, 엎드려 있는 상태에서 시체가 발견됐다면 가슴, 배, 허벅지 위쪽, 무릎 드에 시반이 있게 된다. 이 [시반]이라는 게 법의학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 시반을 통해 [죽은지 얼마 안된 시체]와 [죽은 후 웬만 큼 시간이 흐른 시체], [죽은 지 꽤 시간이 흐른 시체]의 구분을 어느 정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물론 시체를 檢眼(검안)한 시각에서의 逆算(역산)을 통해 대강의 사망 시간대를 추정하게 해주고, 이에 따라 용의자들의 알리바이와 대조해서 범인을 골라 내는 데 도움을 준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체(사망 후 4~5시간 이내)]라면 시반이 시신 피부에 완전히 착색돼 있지 않다. 血色素(혈색소)가 조직에 침투하지도 못했고, 피도 움직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간단히 말해서 [시반이 피부에 달라붙지 못한 경우]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이런 시체를 엎어 놓거나 엎드려 있던 시체를 누이면, 원래 있던 시반은 아예 없어지고 다시 돌려 놓은 상태에서의 아래쪽에 시반이 새로 생긴다. 이런 시반을 법의학에서는 [이동성 시반]이라고 한다. [죽은 지 꽤 시간이 흐른 시체(사망 후 10~12시간 정도 이상 같은 자세로 놓어 있었던 시체)라면 [시반이 피부에 착 달라 붙어 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시체를 아무리 돌려놓더라도 이 시반은 그대로 있게 되고, 돌려놓은 후의 아래쪽에는 가라 앉는 게 없으니까 새로운 시반이 생기지 않는다. 이걸 법의학에서는[침윤성 시반]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사망 후 4~5시간에서 10~12시간 사이에 있는 시체, 즉 [사망 후 웬만큼 시간이 흐른 시체]는 어떻게 될까? 이 시간대에서의 시체는, 앞에서의 표현을 계속 원용하자면 [일부의 시반은 피부에 달라붙어 있고 일부의 시반은 달라붙지 못해 이동할 수 있는]상황이다. 따라서 이 시간대에서
무슨 이유에선가 시체를 뒤집어 놓고 무슨 이유에선가 시체를 뒤집어
놓고 다시 한참을 놔두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달라붙어 있던 시반은 그대로
남아 있고 움직이는 시반은 가라 앉아서 아래에 새로운 시반이 생긴다.
즉 시반이 시체의 양쪽에 생기는 것이다. 이걸 법의학에서는 [양측성
시반]이라고 한다. 양측성 시반 崔씨는 엎드린 자세로 욕조 물에 떠있는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리고 서울경찰청 감식반 金모 반장 등 감식팀이 도착해 崔씨 시신 등을 검안했을때가 이날 오전 11시 30분이었다. 감식반은 시체를 살피기 위해 崔씨의 시신을 자연스럽게 앞으로 돌려서 뉘여 놓았다. 이 때, 즉 얼마 동안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엎드린 자세로 일정 기간 욕조물 속에 방채됐던 崔씨 시신에는 오른쪽 어깨와 가슴, 배, 오른쪽 허벅지 앞쪽 등에 시반이 있는 것으로 관찰됐다. 이 시신의 부검은 다음날 오전 10시 30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權一勳(권일훈)박사에 의해 이루어졌다. 물론 이 때까지 시신은 계속 누운 상태로 보관되고 운반됐다. 그런데 부검과정에서 權박사가 관찰하고 기록한 바에 의하면 權박사가 관찰하고 기록한바에 의하면 오른쪽 허벅지 앞부분에만 반점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시신 뒷부분, 그러니까 등이나 엉덩이 부분에는 광범위 하게 시반이 발견됐다. 만일 오른쪽 허벅지 앞부분에 있는 반점이 [시반]이라면, [양측성 시반]이 발견된 것이다. 하지만 만의 하나라도 이 반점이 죽기 전에 멍들었다든지 해서 생긴 다른 자국이어서 [시반]이 아니라면 崔씨 시신에서는 이동성 시반만 발견된 셈이고 이는 [가슴이나 배, 허벅지 위쪽의 시반이 피부에 붙어 있지 못하고 다 아래로 가라 앉을 정도로 사망한 지 얼마 안된 경우]가 된다. 만일 양측성 시반이 인정되지 않고 이동성 시반만 발견된 것이라면, 崔씨는 감식반이 검안하던 6월12일 오전 11시반으로부터 4~5시간 이내에, 즉 오전 6시반 또는 7시반을 넘긴 시각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게 된다. 즉 남편 李都行씨가 아닌 제3자 범행 가능성이 상당히 설득력을 얻게 된다. 하지만 오른쪽 허벅지 앞부분의 반점이 시반이라면 [양측성 시반]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崔씨는 대체로 전날밤 11시반에서 아침 7시반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게 된다. 물론 검안 시각인 오전 11시반에서 4~12시간을 뺀 수치이다. 따라서 이 때는 李都行씨가 범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물론 이 경우에도 오전 7시~7시30분이라는 시간대는 李씨가 출근한 다음이므로 제3자 범행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다. 이렇듯 崔씨 시신에서 발견된 [오른쪽 허벅지 앞부분의 반점](앞으로는 간단히 [허벅지 반점]이라고 부른다.) 이 [시반이냐 아니냐]하는 것은 이 사건에서 대단히 중요한 관건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 국과수 부검 과정에서 큰 실 수가 하나 있었다. 일반적으로 부검팀은 부검 前(전)과 後(후)에 시신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한다. 나중에 수사 자료로 필요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부검에서는 시신을 뉘어 놓은 채 시신 오른편 옆쪽을 찍은 사진 말고는 다른 각도의 사진이 없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시신을 정면에서 찍은 사진이나 시신 왼편 옆쪽을 찍은 사진 같은 것은 전혀 없다. 그리고 부검 과정에서 이 [허벅지 반점]이 과연 시반 인지, 그래서 양측성 시반이 생긴 것으로 보아야 하는지 여부도 체크되지 않았다. 사실 이 당시 [양측성 시반]이라는 말은 일선 경찰관이나 검사는 물론 웬만한 부검의 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개념일 정도로 법의학 상식은 몇몇 법의학자 외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었다. 崔씨의 시신에 양측성 시반이 있는 것 같다는 의견이 처음 제시된 것은 부검을 마친 崔씨 시신이 火葬(화장)돼 버린 이후였다. 수사를 맡은 당시 은평경찰서 尹健榮(윤건영) 형사계장이 고려대 법의학교실의 黃迪駿(황적준)박사에게 자료를 보내 의견을 구했을 때 오른쪽 부검 사진을 본 黃박사는 [허벅지 반점]을 처음으로 [양측성 시반]이라고 지적한 후 재판 과정에서 이런 주장을 폈다. 黃박사와 함께 가장 권위 있는 현역 법의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서울대 법의학 교실의 李廷彬(이정빈)박사도 일관되게 이에 동의하고 있다. 부검 사진을 가만히 보면[허벅지 반점]가운데에는 얇은 하얀 선, 즉 반점이 생기지 않은 부분이 있다. 그리고 이 얇은 선은 시신 발견 당시 팬티가 걸려 있던 라인과 일치한다. 이게 바고 [허벅지 반점]을 [반점]으로 단정할 수 있는 근거라는 게 黃박사의 말이다. 미세한 적혈구 등이 중력에 의해 가라 앉게 되는 시반 형성 과정에서 피부 중 어떤 부위가 아주 작은 힘에 의해서라도 눌려 있게 되면, 그 눌린 부위에만은 [시반이 달라 붙지]않고 조금이라도 더 밑으로 가라앉아 [달라붙게]된다고 한다. 따라서 팬티가 걸려 눌렸던 부위만 하얗게 반점이 생기지 않은 이 [허벅지 반점]은 전형적인 [시반]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허벅지 반점]을 시반 으로 본다고 해도 의문점은 남는다. 시반이란 중력에 의해 미세한 알갱이가 서서히 가라 앉으며 생기는 것이므로 유독 허벅지에만 시반이 [달라붙어]있고, 가슴이나 배 등의 시반은 떨어져 나가는 것은 법의학적으로 생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黃迪駿박사). 그런데 부검을 했던 權박사는 자기가 관찰한 바로는 분명히 앞면중에서는 오른쪽 허벅지 앞쪽에만 반점이 남아 있었다고 했고 그렇게 증언하고 있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의문을 확인하기 위해 다른 부분을 다시 살펴보려고 해도 부검 때 다른 각도에서 찍어놓은 사진은 없다. 그리고 시신은 이미 화장돼 재가 돼있다. 안타까운 노릇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李박사도 아쉬움을 표시하고 있다. 한편 李박사는 시신이 욕조에 엎드려 있을 때 오른쪽 다리가 더 아래편으로 내려간 상태였기 때문에 허벅지 앞부분에만 시반이 집중적으로 [달라붙어]이런 상황이 생길 수 있으므로, 양측성 시반으로 볼 수 있다는 적극적 주장을 편다. 하지만 黃박사는 이의 견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 이 아리송한 [허벅지
반점]과 양측성 시반 여부에 대해 2심 재판부가 판단한 것은 우리의
기사체로 풀어 요약해본다. [2심 재판부] 對 [대법원] <(허벅지 반점)을 시반으로 인정해서 崔시 시신에 [양측성 시반]으 나타난 것으로 확신하기 힘들다. 또 설사 [허벅지 반점]을
시반으로 쳐서 [양측성 시반]이 생긴 것이라고 해도, 가슴, 배 등의
시반은 [떨어져 나가고] 허벅지에만 시반이 남아 있는 것이니, [달라
붙은]양이 적은 것이고, 따라서 이건 달라붙는 것이 막 시작된, 양측성
시반이 생기는 초기로 보아야한다. 또 崔씨 부검 사진을 보면 드이나 엉덩이에 새로 생긴 시반이 원래 있던 [허벅지 반점]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선명하므로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역시 양측성 시반이 생기는 초기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검안한 11시반으로부터 4시간, 어쩌면 3시간 40분이나 3시간50분 전인 오전 7시30분~7시50분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崔씨가 李씨 출근 전에 사망한 것으로 단정할 수 없고, 오히려 그 후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강, 즉 시체의 경직과 달리 屍斑은 주위 온도 등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이 부분은 법의학적으로 사망시각을 추정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근거이다. 黃박사나 李박사등도 이 사건에서 숨진 부인 崔씨의 사망시각을 오전 7시 이전으로 보는 (이것은 이 사건에서 남편 李씨가 범인이라는 것과 동의어이다.)근거 중 屍斑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2심의 무죄 판결을 뒤집은 대법원 판결은 [사망 시각이 오전 7시 이전이라는 법의학 전문가들의 감정 의견에 2심 재판부가 특별한
이유 없이 의문을 가진 것은 근거가 없다]는 취지로, 검찰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상의 설명이 시반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에 도움이 됐다면 독자도
스스로 어느쪽이 옳은지 판단해 보았으면 한다.⊙ 인터뷰 다시 재판 받게 된 李都行씨 [출근 후 무슨 일 있었는지 알고 싶다.] 지난해 말 동대문에 있는 金亨泰(김형태)변호사 사무실 바로 옆방인 李敦明(이돈명)변호사 사무실에서 李都行씨와 단 둘이 마주 앉았다. 그는 지친 표정이었다. 진범이든 아니든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가 2심에서의 無罪 판결로 [이제 살았구나]하고 생각하던 사람이 대법원에서 [이건 有罪]라는 강한 의지가 담긴 파기 판결을 받아놓았으니 누구에겐들 청천벽력이 아닐까? 李씨는 처음에 말은 하지 않으려 했다. 이 사건이 워낙 관심을 끌어서 재판전에는 私人(사인)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公人(공인)처럼 됐다는 이야기를 포함, 이런저런 설득 끝에야 李씨의 말문을 열 수 있었다. [그래요, 맞습니다. 제가
公人처럼 돼 버렸습니다. … 잊고 싶었습니다.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
컸습니다. 설마 그러랴 싶엇는데…이제는 저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죽느니 하나하나 따져 보면서 다시는 저와 똑같은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꿈틀]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 우리나라 구조가 그렇게 생겨서 그런지, 편견인지…] -당사자로서 지금 심정이
어떻습니까. 저는 단지 제가 출근한 다음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경찰에서 수사받으면서 범인 잡으라고 다 얘기했는데 내가 얘기한 것으로 내 목을 건 셈이 됐습니다. 가족이 죽었고 애가 죽었고, 1심 선고 후부터 사회적으로 저도 완전히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법의학자들은 엉터리입니다. 자료에 나와 있는데 그 따위로 말하고…내가 따뜻한 물에 죽으면서 한 번 따져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법의학자들은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가 없습니다. 독일이나 일본 법의학자들은 현장에 갑니다.
우리도 그렇게 바뀌어야 합니다. 없다면 양성을 해서라도…. 우리나라
법의학은 선입견 갖고 맞춰주는 식입니다. 죽은 법의학입니다.] [죽은 법의학] - 이 사건을 겪으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까. [검찰과 경찰만 수사권한이 있습니다. 한번 잘못되면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외국처럼 사립탐정이라도 두어서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심부름 센터가 있긴 하지만 이런 사건에서 활용할 수준은 아닙니다. 무죄로 풀려나와 도대체 누가 범인인지 찾아보려고 했지만 제가 마음에 짚히는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도 없습니다. 전화만으로는 어렵지 않습니까? 금방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제가 수사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협조해주지 않으면… 경찰에선 선입견이든 뭐든 나오면 잡아갑니다. 검찰, 법원 쪽으로 가면서 만들어갑니다. 한번 뱉은 말을 줏어담기도 힘들고 거짓말한 것처럼 됩니다. 그리고 무죄로 나오더라도 방법이 없습니다. 제가 범인이 아니라고 공표할 수도 없고, 진범이 누구인지 잡을수도 없고… 방법이 없습니다.] - 고인이 된 부인과
사이가 안 좋았다는 이야기가 있고 이로 인해 범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사이가 실제로 어땠습니까. [결혼 초기에 좀 싸우기는
했지만 좋아졌어요. 제가 때린 적도 없고 최근에는 애 가지려고 무척
노력을 해왔습니다. 강릉에서 군의관 할 때도 비행기로 왔다갔다 하면서
많이 만났습니다. 제가 잘못이 있다면 아내를 믿어서 남자 친구도 인정을
했습니다. 경찰서에서 아내 일기장 내용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차라리 알았다면 제가 헤어져 주었을 것입니다.] - 경찰 수사에서 가혹행위는 없었습니까. [고문은 없었습니다.
7번 정도 조사받았는데 거의 밤샘 수사였어요. 머리 쥐어 박히고 안경
벗고 뺨 맞고 하는 정도였습니다] - 수사진에 섭섭한 것은 없습니까. [그러려니 합니다. 다만
나 하나뿐아니라 다른 사람도 이렇게 만들까봐 걱정됩니다. 오히려 저에게는
믿었던 몇 사람이 돌아선 게 섭섭합니다. 장모나 장인, 저와 아내를
소개했던 처형이나 막내 처남 같은 사람…] - 사건 당일날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했습니까. [그 날이 제 병원 개원식이라
아침에 가방 들고 나가는데 아내가 딸에게 [아빠한테 돈 많이 벌어오라고
해]하고 말해서 애기에게 뽀뽀했어요. 그러니까 아내가 [나한테는 안해줘]가고
얘기했던 게 마지막이었습니다.] 李씨는 인터뷰 내내 말을 잘 잇지는
못했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심경을 표현했다. 법정에서의 囚依(수의)를
입은 모습이나 TV 화면에서 보았던 인상보다 실제로 본 李씨의 모습은
훨씬 [선한]느낌이었다. 기록만을 놓고 판단하게 되는 대법원 재판부가
李씨를 직접 대면하면서 재판을 했더라면 심증에 다른 영향이 있엇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이 사람이 범인이 아닐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석에서 만난 한 법조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자
그는 [진범이라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오랜 기간 범행을 부인하다
보면 스스로 일종의 [최면]에 걸려 정말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질 수도 있으니 지금 피고인을 보며 갖는 느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변호인, [李都行씨 결백 확신] 2심 재판부터 李씨의
변론을 맡아 無罪 판결을 받아냈던 덕수합동 법률 사무소 팀 중에서도
[主戰(주전)은 金亨泰 변호사. 金변호사는[정말 李씨가 결백하다고 확신하느냐]는
질문에 [물론]이라고 단언했다. - 어떻게 결백을 확신합니까. [변호인으로서 李都行씨와 만나며 정말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그는 수사 과정에서 사실만을 말한다는 차원에서 자신이 말하지 않으면 알려지지 않았을, 스스로에게 불리한 이야기도 다 털어놓았습니다. 검찰주장처럼 시신을 욕조에 넣고 현장을 위장할 교활한 사람이 자발적으로 자신에게 올가미가 될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는 게 이치에 맞는 말입니까?] 김변호사가 말하는, 스스로 말하지 않았으면 알려지지 않았을 불리한 이야기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우선 신혼때 李씨의 동생들, 즉 시동생들과 부인 崔씨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부분에 대해서도 李씨는 경찰조사 과정에서 자세히 진술하고 있다. 또 사건이 나기 직전인 6월11일날 밤 10시경, 李씨가 누나와 통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병원 사무장으로 누나가 오면 어떻겠느냐는 말을 한 것도 남편 李씨가 말하지 않았다면 밝혀지지 않았을 부분이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시댁 식구들이 남편 병원의 수입을 가져갈 것에 대해 민감하게 우려하고 있던 부인 崔씨가 남편 李씨에게 따지고 들었고 이로 인한 말다툼 끝에 살인이 촉발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李씨가 말을 하지 않았다면 李씨에게 호의적일 수 밖에 없는 李씨 누나 역시 구태여 말하지 않았을 유력한 [범행 동기]를 피고인이 스스로 진술한 셈이다. 검찰은 이를 李씨의 실수로 보고 있고, 金변호사는 李씨가 결백하므로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정황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외에도 몇가지 근거를
들며 金변호사는 李都行씨가 정말 억울한 피고인이라는 말을 했고, 그런
주장을 펴는 金변호사의 표정에는 변호를 맡은 피고인에 대해 의례적으로
무죄를 주장하는 변호사의 修辭(수사)이상의 진심이 담겨 있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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