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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2001)

 

 

 

사건관련 기사

 

99/10/26 문화일보
[기획] 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관심모으는  파기환송심
 "법의학 공방 어떻게 전개될까"

 

 

 

 

 

 

 

<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법리다툼 이어 법의학 공방 번져

 

 

 

                

[김재곤 기자]

 

 

 

 지난 95년 발생 당시 ‘한국판 O J 심슨 사건’으로 불리며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이 법정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사건 현장에서 머리카락 한올의 단서조차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과 검찰은 각종 정황증거와 법의학적 판단을 근거로 남편을 범인으로 단정, 기소했고 변호인과 종교단체에서는 남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필사적인 법정투쟁을 벌여왔다. 최근 변호인측이 국제적 법의학자를 증인으로 법정에 출두시킴으로써 이 사건을 둘러싼 유·무죄 논란은 이제 국제적 법의학 논쟁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법원은 법원대로 ‘형사사건에서 간접증거만을 근거로 한 유죄추정은 어디까지 가능한가’를 놓고 고등법원과 대법원이 칼날같은 법리(法理) 차이를 보이고 있다. 파기환송심 선고를 앞두고 있는 이 사건을 새삼 재조명해 보는 것도 단순한 치정살인의 수준을 이미 넘어선 이 사건의 성격을 새롭게 규정하기 위함이다. <편집자주>

 

 

95년6월 서울 불광동 모아파트에서 치과의사 최모(여·사망당시 30세)씨가 한살짜리 딸과 함께 목이 졸려 숨진채 물이 담긴 욕조안에서 발견됐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석달뒤 범인으로 외과의사인 남편 이도행(李都行.37)씨를 구속,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검찰도 ▲이씨가 출근한 오전 7시 이전에 최씨가 숨진 것으로 추정되며 ▲최씨와 시댁간 불화 등 살해동기가 있는데다 ▲제3자 범행가능성이 없고 ▲시체를 뜨거운 물속에 넣어 사망시각추정에 혼란을 주고 출근후에야 연기가 발견되도록 지연화재를 일으킨 점 등을 볼때 고도의 의·과학지식을 지닌 이씨가 범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씨는 내내 결백을 주장했지만 96년2월 서울지법 서부지원은 검찰측 주장을 받아들여 사형을 선고했다. 정황증거의 증거능력을 놓고 법조계 내부에서도 치열한 논란이 벌어진 가운데 이씨가 항소, 4개월여동안 항소심 재판이 진행됐다.

 

 

서울고법은 같은해 6월 “법관은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엄격한 증거가 없다면 피고인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형사법상의 대원칙을 들어 무죄를 선고, 예비사형수로 이씨를 영등포교도소에서 석방했다.

재판부는 “사망시각추정과 관련한 각종 증거들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며 명백한 증거가 없는 만큼 피고인을 진범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번에는 검찰이 반발, 즉각 상고했고 대법원은 2년4개월여의 ‘장고(長考)’끝에 사건을 또다시 뒤집었다. “간접 증거 하나하나의 증명력이 완전하지 않아도 전체 증거의 증명력이 있다면 유죄를 인정할 수 있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낸 것. 이에 따라 이씨는 지난 2월부터 또다시 재판을 받아왔다.

초동수사 미비 등으로 인해 목격자, 지문, 혈흔, 범행도구 등 범인을 찾아낼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이 사건에서 최대 쟁점은 ‘범행시각이 이씨가 출근한 오전 7시 이전이냐, 이후냐’를 확인하기 위한 사망시각추정.

검찰은 양측성 시반(屍斑·사망자의 피부에 나탄나는 붉은 점)의 존재, 시체의 굳기 등에 대한 국내 법의학자들의 소견을 증거로 제시했다.

양측성 시반은 사망후 통상 4∼10시간이 지난뒤 시체를 반대로 돌려놨을때 시체 양쪽에 생기는 반점. 검찰은 사건당일 오전 11시30분 검안한 최씨의 시신에서 양측성 시반이 발견됐다고 보고 최씨의 사망시각은 오전 4시 이전, 늦어도 오전 7시 이후로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시강(屍剛·사망자 시신의 경직현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일반적으로 사망후 6∼7시간이 지나면 시신은 뻣뻣해지게된다. 검안당시 최씨 시신은 전신강직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최씨의 사망시각은 대체로 오전 3시30분∼4시30분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변호인측은 지난 19일 파기환송심 5차공판에서 스위스의 세계적인 법의학자 토마스 크롱페쉐르(53)교수를 증인으로 출석시켜 ‘재역전’을 위한 반격을 시작했다.

크롱페쉐르 교수는 “숨진 최씨처럼 시신이 뜨거운 물에 잠겨 있을 경우 2시간만에도 시체강직이 올 수 있다”며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사망시각을 추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도 불구, 현장에 가보지도 못한 한국 법의학자들이 사망시각을 7시 이전으로 단정한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증언했다. 크롱페쉐르 교수는 이후 인터뷰에서도 “시신을 통한 불확실한 사망시각추정은 유죄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가장 유력한 증거에 대해 권위있는 외국 법의학자가 이의를 제기함에 따라 법원은 또다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게됐다.

변호인단은 크롱페쉐르 교수의 증언 등을 무기로 사망시각추정과 관련, 공방을 벌이는 한편 검찰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실제 화재재현 시뮬레이션을 추진하는 등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사형, 무죄, 또다시 유죄취지의 파기환송이라는 곡절 끝에 최후의 심판대에 오르게된 치과의사모녀 살해사건. 이번에는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를 놓고 오는 12월21일 6차 공판이 예정된 서울고법 403호 법정으로 또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사건 주제로 국제회의 열자 - <인터뷰>새소견 낸 스위스 법의학자 로잔느大 크롱페쉐르 교수

 

 

[김승현기자]

 

 

“이 사건은 (나에게)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사건이다.이번 사건이 한국의 법의학자와 스위스 법의학자간의 말싸움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나는 한국과 국제법의학자들에게 이 사건을 주제로 한 국제회의 개최를 정식으로 제안한다.”

‘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과 관련,‘사건 당일 오전7시 이후 이씨가 집안에 없는 상태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소견을 밝혀 이 사건을 새로운 국면으로 이끈 스위스 로잔대 법의학자 토마스 크롱페쉐르교수는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노보텔 앰배서더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밝혔다.

크롱페쉐르교수는 “법의학은 합산해서 중간치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수치적 중간치가 아니라 극단적인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어 한계치를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법의학자의 소견은 사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확신이 없을 때는 서슴지 않고 ‘모른다’고 대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스위스에서는 법의학자와 경찰이 어떻게 협력하는가.
“법의학자는 사건현장에 가능한한 빨리가야 한다.현장에 빨리 갈수록 많은 정보를 얻게 되고 겉으로 나타나는 육체적 현상뿐 아니라 주변상황과의 관계를 통해 정확한 사인을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또 법의학자의 독립성유지는 필수적이다.이를 위해 유럽의 경우 법의학자는 대학에 속해 있다.”

-이 사건과 관련,한국 법의학자와 생각이 많이 다른데.
“이상적인 조건하에서도 사망시간을 구체적으로 추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특히 이 사건의 경우 사체가 뜨거운 물에서 냉장고로 옮겨지는 등 극단적인 환경의 변화를 거쳤으며 23시간이 지난후에 현장도 아닌 곳에서 법의학적 검토가 이루어졌다.이 경우 사체를 통한 사망시간 추정은 ‘완전히’ 불가능하다.또 이같은 상황에서 도출된 한국 법의학자의 결론에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가장 큰 이유는 한국법의학자들이 사체가 발견 당시 뜨거운 물속에 있었다는 점을 간과한 점이다.뜨거운 물에 들어가 있을 경우 시강이 빨리오고 전기충격으로 사망했을때는 시강과 시반의 발현이 더욱 빠르다.”

크롱페쉐르교수는 국제법의학회 회장인 영국의 버나드 나이트교수가 추천한 시강과 시반에 의한 사망시간 추정에 세계적 권위자이며 35년동안 법의학에 전념했으며 스위스의 약 25명으로 추정되는 정식 자격증을 가진 법의학자다.
그는 이 사건과 관련,“한국법의학자와 토론을 못해 유감”이라면서 23일 스위스로 돌아갔다.

 

 

 

 

 

<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변호인측 주장

 

 

 

[김상협 기자]

 

 

 

이도행씨 변호인단은 이번 재판에서 이씨의 무죄를 입증하는 데 제일의 목표를 두면서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씨와 같은 억울한 피해자가 양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존의 주먹구구식 심증수사 관행에 쐐기를 박고 과학적인 수사시스템을 정착시키겠다는 입장이다.

나아가 인권확립 차원에서 ‘혐의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의 이익을 우선하는’ 이른바 무죄추정의 원칙과 엄격한 증거주의원칙이 사법적 판단을 내림에 있어 확고부동한 기준으로 자리잡는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변호인단의 김형태(金亨泰) 이석태(李錫兌)변호사는 26일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순간부터 법의학팀이 달려가 사체(직장부위)의 체온측정과 단서수집 등 과학적 시스템에 의한 검시과정을 거쳤더라면 이번 사건과 같은 법의학 논쟁은 필요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시는 물론,지금도 이같은 과학적인 검시제도가 도입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이씨와 같은 곤경에 처할 수 있다는 게 변호인단의 우려다.초동수사부터 당연히 해야할 일을 방기하고 ‘직접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니까 무리하게 가정불화와 행적 등의 ‘정황증거’와 심증수사만으로 생사람에게 살인혐의를 씌우는 악순환이 되풀이된게 우리의 수사현실이라는 지적이다.

이와함께 ‘증거주의’ 원칙을 인권보장의 핵심으로 주장하는 변호인단은 대법원이 “간접증거가 완전한 증명력을 못가져도 ‘종합적 증명력’이 있으면 유죄를 인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데 대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천주교 인권위의 김인자(金仁子) 사무국장은 “이같은 판결은 수사기관이 과학수사를 외면하고 느슨하게 정황수사만 하도록 내모는 것”이라며 “수사팀의 ‘짜맞추기’수사에 의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인범이 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지난 9월 ‘이도행을 생각하는 모임’ 발족식을 집전한 김수환(金壽煥)추기경도 “증거재판 원칙을 보호해야 할 대법원이 이에 따른 고법의 판결을 파기했다는 점에서 국가가 국민의 인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지 못하고 유린할 수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아쉬움을 토로했었다.

 

 

 

 

 

<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검찰측 주장

 

 

 

[한종호 기자]

 

 

 

크롱페쉐르 교수의 법의학적 소견에 대한 검찰의 입장은 한마디로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 관여하고 있는 검찰 관계자는 “극히 민감한 사안이고 법원에서 심리를 진행중인 사건인 만큼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전제 아래 “크롱페쉐르 교수의 증언은 중립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크롱페쉐르 교수가 변호인측이 신청한 증인으로,변호인측에 유리한 증언을 할 수밖에 없는데다 과연 그가 변호인으로부터 충분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사전에 제공받았는지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이유에서다.그래서 검찰은 크롱페쉐르 교수에게 제출한 자료 목록을 공개할 것을 변호인측에 요청하기로 했다.

사건이 대법원을 거쳐 서울고법의 파기환송심에 이르기까지 검찰은 공소장 변경 없이 당초의 공소 취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경우 지문이나 머리카락 같은 직접증거가 전혀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범인이 모든 것을 자백하지 않는 한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그러나 검찰이 각종 간접증거를 토대로 제기한 공소의 기본 구조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검찰측이 제출한 증거의 불완전성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이도형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는데는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검찰은 변호인측이 끈질기게 제기해 온 의혹들,즉 ▲피해자 최씨의 시신에 나타난 시반과 시강만으로는 사망시간을 단정하기 어렵고 ▲이씨가 방화를 할 이유가 없으며 ▲법의학적 판단에 필요한 기본적 현장감식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등의 지적에 대해서도 “간접증거에 대한 해석은 엇갈릴 수 있다”며 이를 일축하고 있다.

특히 검찰은 대법원에서 “증거로서의 가치가 있다면 비록 간접증거라 하더라도 배척해서는 안된다”는 취지로 항소심 판결(무죄선고)을 파기환송한 데 고무돼 있다.어차피 변호인측이나 검찰 모두 유·무죄를 가릴만한 확증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각종 간접증거의 해석을 둘러싼 공방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있다는 판단 때문이다.검찰은 크롱페쉐르 교수의 증언이 이같은 상황을 뒤집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